문화재 불법유출돼도 즉각 알 방법 없어

조선 후기 대학자 명재(明齋) 윤증(1629~1714)의 초상화(보물 1495호), 추사 김정희(1786~1856)가 그린 세한도(국보 180호), 조선 초 성리학자 미암(眉巖) 유희춘이 남긴 '미암일기(보물 260호)' ….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보물로 지정된 이 유물은 모두 개인이 갖고 있다.

김민영(65) 부산저축은행 대표가 '월인석보(月印釋譜) 권9·10'(보물 745-3호) 등 보물 18건을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국보·보물의 관리 체계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개인 소장 유물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을 경우, 국가는 해당 유물의 관리·매매에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을까?

◆소유자 바뀌면 15일 내에 신고해야

문화재청 통계에 따르면, 5월 22일 현재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동산문화재는 1288건(국보 221·보물 10 67). 그 중 개인(서원·문중 포함)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는 21.27%인 274건이다.

문화재보호법(최초 제정 1962년)은 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지정문화재라고 해도 사유 재산일 경우 해외로 유출되지 않는 한 사고파는 데 제한을 두지 않는다. 문화재보호법 40조 및 시행령 23조에 의하면, 소유권 변동이 생긴 지 15일 내에 바뀐 소장자가 해당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문화재청에 신고만 하면 된다. 보물 18건을 헐값 매각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김민영 대표의 경우에도 지난 3월 23일 이들 유물을 한꺼번에 구입한 심모(46)씨가 소유자 변경 사실을 신고하면서 매매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지정문화재를 보관할 장소가 바뀌었거나 전시 목적으로 국내에서 유물을 이동시킬 때에도 시·군·구 등 지자체를 통해 문화재청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어겼을 경우 과태료는 200만원 이하에 불과하다(문화재보호법 103조). 개인 소유라 할지라도 문화재는 외국으로 팔 수도 없고, 해외 전시를 위해 잠시 반출하는 것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서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만약 허가 없이 문화재를 해외로 빼돌렸을 경우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문화재는 몰수한다(문화재보호법 90조).

◆5년마다 문화재청이 관리 실태 조사

그러나 문화재가 불법반출된다 하더라도 정부가 즉각 알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김창준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은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관리의 책임은 개인 소장자에게 있지만, 문화재보호법 44조 및 시행규칙 28조에 따라 문화재청이 5년마다 현장에 나가 정기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5년에 한 번, 직원과 관련 전문가 2~3명이 동행해 해당 유물이 신고된 장소에 보관돼 있는지, 보관 상태와 주변 환경은 어떤지를 점검한다.

일부러 훼손한 경우로 밝혀지지 않는다면, 유물이 훼손됐다 하더라도 처벌할 근거는 없다. 기본적으로 사유 재산이기 때문이다. 조사결과 유물의 상태가 심각하거나 훼손이 우려될 경우엔 국가·지자체 예산(보통 국비 70%, 지방비 30%)을 투입해 보존처리를 해준다. 국가지정문화재 소장자의 '관리 의무'에 비해 혜택이 더 많은 셈. 김민영 대표가 갖고 있던 '월인석보 권9·10'도 2009년 정기 조사 과정에서 책 모서리 부분이 닳고 종이가 변색된 것이 확인돼 보존 처리를 받았다. 예산은 총 4000만원. 국비 2800만원, 지방비 1200만원이 투입됐다.

남기황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사무관은 "개인이 갖고 있는 유물은 주로 초상화, 전적 등의 지류(紙類) 문화재가 많아 습기에 취약하지만 박물관처럼 보존 처리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가 예산을 들여 보존 및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