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父子 이야기에 꽂히다

문제는 여전히 가족관계, 특히 부모·자식 간의 관계인 걸까. 제64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수상작과 초청작의 면면을 통해 본 세계 영화계의 흐름이다. 나만이 아니다. 버라이어티지도 올 칸을 결산하며 그 경향을 짚었다. 그중에서도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가 더욱 도드라진다.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핫 이슈였던 것.

당장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테렌스 말릭의 '더 트리 오브 라이프(생명의 나무)'부터가 그렇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고전적 내러티브 영화라기보다는 한 편의 영화적 교향곡"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영화를 내러티브적으로 접근하면, 결국 가부장적 아버지(브래드 피트)와, 그 아버지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아들 잭(헌터 멕라켄/숀 펜)과의 갈등·충돌·화해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심사위원 대상 공동 수상작 '더 키드 위드 어 바이크(자전거를 탄 소년)'도, 주인공 소년이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찾으려고 무던히 애쓰는 데서 사건은 출발한다. 각본상 수상작인 '각주(脚註)'는 아예 학자로서 명성이 자자한 부자(父子)지간의 '대결'이 소재다. 여느 아버지들과는 달리 그 아버지는 자기보다 더 잘나가는 아들을 질투하고, 그로 인해 의기소침해한다.

감독상의 '드라이브'마저도 일견 잘 빠진 액션 범죄 스릴러의 외형을 취하곤 있지만 속내는 '의사(擬似) 아버지(pseudo-father)' 스토리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사내가 낮에는 할리우드 운전 스턴트맨으로, 밤에는 범죄 조직의 드라이버로 이중생활을 한다. 그는 우연히 만나 호감을 느끼게 되는 이웃집 여인과 그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범죄 조직과 사활을 건 한판승부를 벌인다. 그로써 남자는 스스로 범죄자가 되어가는, 가짜아버지 영웅담이다. 영락없이 원빈 주연 '아저씨'의 미국 버전이다.

더 이상의 예는 생략하련다. 비수상작으로까지 넓혀나가면, 이 경향은 훨씬 더 도드라진다. 황금종려상을 다투는 경쟁 부문에 우리 영화가 한 편도 진출하지 못했는데도 올 칸이 그 어느 해보다 흥미로웠던 이유 중 하나다.

경쟁 부문을 넘어 칸의 전 섹션으로 시선을 확장시킬 경우 이상성애(異常性愛), 그중에서도 소아성애(小兒性愛·pedophilia)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영화들이 다수였다는 것도 올 칸의 주요 경향 중 하나다. 범유럽 영 시네마 네트워크에서 발간한 칸 니시마진(Nisimazine)에 따르면 최소 5편 이상이 그 문제를 짚었다. 경쟁 부문에도 2편이나 있다. 심사위원상을 받은, 프랑스 여성 감독 마이웬의 '폴리스'와 오스트리아 마르쿠스 쉴라인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미하엘'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빚어진 '폴리스'는 아동 성범죄를 전담하는 일군의 프랑스 경찰 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섬뜩한 범죄·경찰 드라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의 경계가 와해되는 영화를 즐기기란, 그 충격적 속내와 결말 때문에 쉽지 않다. 수상에 실패한 '미하엘'은 결코 소아성애를 직접 다룬 영화는 아니지만 10세 소년과 문제적 관계를 갖는 35세 주인공이 의사(擬似)아버지이자 소아성애자다.

이런 경향들은 올 칸에만 한정될 우연의 산물인 걸까, 앞으로도 지속될 하나의 흐름인 걸까. 지금으로선 장담할 도리가 없다. 분명한 건 지금껏 14차례 칸을 찾은 경험에 비춰 판단해 보면 올해처럼 이런 경향 내지 특징이 도드라졌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 칸에 나간 한국 영화들은 장편(3편)이건 단편(4편)이건 앞에서 열거했던 칸의 경향과는 동떨어져 있다. 소아성애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다시마(이정진) 감독의 단편 경쟁작 '고스트'만 빼고는. 이 다름은 한국 영화만의 고유한 특성 때문일까, 아니면 세계 영화의 도도한 흐름에 우리 영화들이 보조를 맞추지 못한 결과일까. 칸이 한국 영화계에 던져준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