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균 감염자위암 걸려도 생존율 높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자는 위암에 걸리더라도 생존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예상 밖의 사실'이 국내 의료진의 연구에 의해 밝혀져 국제 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까지 헬리코박터균 감염은 위암 발생 위험 요인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 균의 감염자가 위암에 걸려 치료를 받을 경우에는 오히려 위암에서 살아남는 생존율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아주대병원 종양혈액내과 최진혁·강석윤 교수팀은 지난 1994년부터 1999년까지 6년간 이 병원에서 위암으로 진단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 274명을 치료 후 10~15년간 추적 조사했다. 환자가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는지 여부는 수술로 절제된 위장에서 위암이 없는 부위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 헬리코박터 감염이 없거나 이 균이 매우 적게 발견된 환자는 위암 치료 후 10년 생존율이 21%였지만, 헬리코박터균 양성이었던 환자의 생존율은 72%로 상대적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즉 위암 발생 당시 헬리코박터 감염자가 유사한 치료를 받고도 오래 산다는 얘기다.

이같은 현상은 위암의 병기(病期)에 상관없이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났다. 심지어 헬리코박터 감염이 있던 사람이 위암 말기에 해당하는 4기였더라도 치료 후 생존율은 위암 초기 환자와 유사했다. 연구팀은 헬리코박터 감염 정도가 위암 수술 후 생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자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연구 결과는 국제암연맹(UICC)에서 발간하는 저명한 국제학술지 '암 국제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Cancer)' 최신호에 게재됐다.

이제까지 헬리코박터균 감염은 위암을 일으키고 위궤양 등의 위장병을 일으키고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헬리코박터균이 위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성인에서 이 균의 감염이 확인되면 2주간의 항생제 치료를 권하는 것이 일반적인 의학계의 관례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존의 의료계 견해를 뒤집는 결과다.

최진혁 교수는 "헬리코박터균이 위암 발생 후에는 이에 저항하는 면역적인 효과를 내는지, 아니면 기존의 감염 진단 방법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며 "어떻든 위암 환자에서 이 균의 감염이 없다면 생존률이 낮으니까 좀 더 적극적인 항암 치료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elicobacter pylori)균

위 속에 사는 세균으로 위염·위궤양·위암 등 위장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2년 호주의 병리학자 로빈 워런 등이 이 세균을 발견했다. 다른 장기에는 살지 않고 위에서만 생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강력한 생존력 때문에 세계 인구의 절반이 보균자일 정도로 인류에게 흔한 감염균이다. 한국에서도 성인 10명 중 7~8명이 이 세균에 감염돼 있다는 보고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균을 위암의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