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와 사유… '최인호 정신'은 여전히 젊다
입력 : 2011.05.25 03:09
소설가 오정희, 최인호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고
나조차 낯선 존재가 되는 공포, 한 남자의 정체성 찾기 그려… 현실과 환상의 경계 부수고 神·죄·윤리 문제 집요한 탐구
소설가 최인호(66) 최초의 전작(全作) 장편소설로 화제를 낳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여백미디어)가 출간됐다. 햇수로 4년째 침샘암 투병 중인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쓰는 두 달 동안 항암치료를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손톱 한 개와 발톱 두 개가 빠졌다"면서 "빠진 오른손 가운데 손톱의 통증을 참기 위해 고무 골무를 끼우고 20매에서 30매 분량의 원고를 매일같이 작업실에 출근해 집필했다"고 공개 했다. 동료 소설가 오정희(64)씨가 서평을 보내왔다.
인간의 사물화 현상과 불안, 소외 심리 등을 소설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와 문학의 도래를 알린 ‘타인의 방’ 은 “1970년대를 상징하는 공간적 은유”로 불리우며 한 시대를 여는 기념비적 작품이 되었다. 그로부터 꼭 40년 후 ‘타인의 방’은 같은 작가에 의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그 외연을 확장하며 깊고 넓어진다.
평범하고 성실한 직장인으로, 단란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K의 악몽은 휴일 아침 달콤한 늦잠을 방해하는 자명종 소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일상과 관계, 주변의 모든 것들, 이윽고 자기 자신마저 낯설게 느껴지면서 그가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악몽이 아닌 구체적 현실임을 인지하게 되는 이 소설은 3일간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의혹과 분노, 절망과 불안으로 긴장의 수위를 높여간다.
강박적으로 반복하여 자신에게 주지시키는 ‘낯익은’이라는 표현이 낯섦에의 공포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결국 ‘낯익음’ 이란 ‘낯섦’과 이음동의(異音同意) 라는 작가의 전언은 서늘하다. 내가 나로부터 낯설어지는 그 쓸쓸함과 두려움을 알기에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까닭 없이(아이들은 자신들이 영문 모르게 던져진 이 세상의 낯섦이 무서워 운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목놓아 우는 아이들의 울음을 무력한 슬픔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인간의 사물화 현상과 불안, 소외 심리 등을 소설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와 문학의 도래를 알린 ‘타인의 방’ 은 “1970년대를 상징하는 공간적 은유”로 불리우며 한 시대를 여는 기념비적 작품이 되었다. 그로부터 꼭 40년 후 ‘타인의 방’은 같은 작가에 의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그 외연을 확장하며 깊고 넓어진다.
평범하고 성실한 직장인으로, 단란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K의 악몽은 휴일 아침 달콤한 늦잠을 방해하는 자명종 소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일상과 관계, 주변의 모든 것들, 이윽고 자기 자신마저 낯설게 느껴지면서 그가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악몽이 아닌 구체적 현실임을 인지하게 되는 이 소설은 3일간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의혹과 분노, 절망과 불안으로 긴장의 수위를 높여간다.
강박적으로 반복하여 자신에게 주지시키는 ‘낯익은’이라는 표현이 낯섦에의 공포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결국 ‘낯익음’ 이란 ‘낯섦’과 이음동의(異音同意) 라는 작가의 전언은 서늘하다. 내가 나로부터 낯설어지는 그 쓸쓸함과 두려움을 알기에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까닭 없이(아이들은 자신들이 영문 모르게 던져진 이 세상의 낯섦이 무서워 운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목놓아 우는 아이들의 울음을 무력한 슬픔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어떤 이들은 이 소설에서 예수의 희생과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어떤 이들은 훼손되고 깨어진 관계를 원형대로 회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갈망에서 신화적 구조를 읽고, 어떤 이들은 소설 전체를 하나의 알레고리로 받아들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들의 평온과 안정을 한순간에 흩어버리는 삶의 불확실성에 전율하며 나 또한 한낱 복제품이거나 그림자이거나 섀도박스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혹에 사로잡히기도 할 것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과감히 부수고 연극의 무대처럼 시간의 공간화를 시도하는 기법에서 작가의 젊은 문학 정신과 패기를 보기도 할 것이다.
이 소설이 현대인의 분열된 자아를 그린 심리소설이나 판타지를 넘어서는 것은, 우리 소설 전통에서는 흔치 않았던, 신에 대한 사유, 죄와 윤리에 대한 집요한 물음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방’에서, 서 있던 자세 그대로 굳어가며 “마치 부활하는 것처럼 보였던” 주인공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다른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지하철에 뛰어들어 죽는다는 희생제의를 치른다. 그리고 그 죽음의 순간에 비로소 실체가 되어 진정한 ‘나’ 즉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근원이 된다.
산 채로 사물이 되어버린 인물이 부활하기까지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40년이란 갓 태어난 아기가 장년에 이르는 시간이자 약속의 땅을 향해 험난한 광야를 걸었던 모세의 시간이다. 신의 응답과 현현을 기다리는 은수(隱修)수도자의 외로운 시간이기도 하고 한 인간이 지상에서의 생(生)이라는 배밀이에서 겨우 팔을 짚고 몸을 일으키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모세는 끝내 약속의 땅에 들지 못했고 은수수도자는 깊은 고독과 침묵 중에 신의 옷자락을 흘깃, 환시처럼 찰나적으로 보았거나 못 보았거나 그러할 것이다. 작가로서 살아가는 시간 역시 그러하지 않겠는가.
나는 한 뛰어난 작가의 오랜 글쓰기 여정이 도달한 지점, 영혼의 기록으로 이 소설을 읽으며, 문학과 종교 혹은 예술과 영성의 아름다운 합일을 만나는 행복감을 느꼈다.
작가는 고백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남에게 읽히기 위한 문학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며 나중에는 단 하나의 독자인 나마저도 사라져버리는 본지풍광(本地風光)과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창세기를 향해 당당하고 씩씩하게 나아가겠노라고”
우리에게 저마다 공평히 주어지는 생이라는 이 기괴하고도 지난한 사업이자 신비하고 놀라운 사건에서 내가 보고 느끼고 사유한 것에 대해 오직 나 자신만을 독자 삼아 쓰고 싶다는 것이 ‘글쓰기’라는 지극히 사적인 욕망의 정점인지 회귀점인지 도달점인지 알지 못하는 채로, 글 쓰는 자는 모두 그처럼 내밀한 소망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니.
이 소설이 현대인의 분열된 자아를 그린 심리소설이나 판타지를 넘어서는 것은, 우리 소설 전통에서는 흔치 않았던, 신에 대한 사유, 죄와 윤리에 대한 집요한 물음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방’에서, 서 있던 자세 그대로 굳어가며 “마치 부활하는 것처럼 보였던” 주인공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다른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지하철에 뛰어들어 죽는다는 희생제의를 치른다. 그리고 그 죽음의 순간에 비로소 실체가 되어 진정한 ‘나’ 즉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근원이 된다.
산 채로 사물이 되어버린 인물이 부활하기까지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40년이란 갓 태어난 아기가 장년에 이르는 시간이자 약속의 땅을 향해 험난한 광야를 걸었던 모세의 시간이다. 신의 응답과 현현을 기다리는 은수(隱修)수도자의 외로운 시간이기도 하고 한 인간이 지상에서의 생(生)이라는 배밀이에서 겨우 팔을 짚고 몸을 일으키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모세는 끝내 약속의 땅에 들지 못했고 은수수도자는 깊은 고독과 침묵 중에 신의 옷자락을 흘깃, 환시처럼 찰나적으로 보았거나 못 보았거나 그러할 것이다. 작가로서 살아가는 시간 역시 그러하지 않겠는가.
나는 한 뛰어난 작가의 오랜 글쓰기 여정이 도달한 지점, 영혼의 기록으로 이 소설을 읽으며, 문학과 종교 혹은 예술과 영성의 아름다운 합일을 만나는 행복감을 느꼈다.
작가는 고백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남에게 읽히기 위한 문학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며 나중에는 단 하나의 독자인 나마저도 사라져버리는 본지풍광(本地風光)과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창세기를 향해 당당하고 씩씩하게 나아가겠노라고”
우리에게 저마다 공평히 주어지는 생이라는 이 기괴하고도 지난한 사업이자 신비하고 놀라운 사건에서 내가 보고 느끼고 사유한 것에 대해 오직 나 자신만을 독자 삼아 쓰고 싶다는 것이 ‘글쓰기’라는 지극히 사적인 욕망의 정점인지 회귀점인지 도달점인지 알지 못하는 채로, 글 쓰는 자는 모두 그처럼 내밀한 소망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