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PEF(사모투자펀드) 29조 규모로 팽창… 금융戰士로 우뚝

◆PEF가 전면에서 진두지휘

그동안 토종 PEF들은 글로벌시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외국계 PEF에 비하면 규모나 인지도, 노하우 측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세계 최대 골프용품업체를 꿰찬 미래에셋 PEF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쿠쉬네트의 모회사인 포천브랜즈는 초기에만 해도 "당신들이 뭔데 인수하겠다는 거냐"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더구나 블랙스톤과 같은 세계적인 PEF들이 아쿠쉬네트 인수전에 모두 뛰어든 상태에서 힘겨운 싸움이 예상됐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아시아 지역에 대한 전문성을 내세웠다. 한국 기업이 인수해야만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이번 아쿠쉬네트 인수건은 순수하게 국내에서 만들어진 PEF가 대형 기업을 인수하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밑그림을 그리고 전 과정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국내 PEF의 레벨을 한 단계 올린 사건으로 불린다.

미래에셋은 글로벌 M&A시장에서 돈 될 만한 물건(아쿠쉬네트)을 물색해냈고,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능력 있는 기업인(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을 찾아내고, 매도자(모회사 포천브랜즈)에 찾아가 적극적인 PR을 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움직였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아쿠쉬네트처럼 브랜드 가치가 높고 시장 지배력이 있는 회사가 오히려 좋은 인수 대상이 된다"며 "윤윤수 회장처럼 뛰어난 경영 감각을 지닌 전략적 투자자와 같이 들어간다는 것도 의미 있다"고 말했다.

◆年 복리 10% 이상 수익률이 목표

PEF는 통상 투자자들에게 받은 자금을 3~7년 장기로 운용하면서 연 복리 10% 이상 두 자릿수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처음 PEF가 도입되었을 당시만 해도 성적표는 지지부진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PEF 운용 노하우가 쌓이면서 세 자릿수가 넘는 '전설적인' 수익률을 올리는 경우도 늘고 있다.

PEF 운용사인 H&Q가 국민연금 등에서 출자받아 설립한 'H&Q-국민연금 1호' PEF가 그런 예다. 이 PEF는 지난 2007년 신용카드 결제 서비스업체인 케이에스넷의 지분 49.3%를 374억원에 사들였다. 3년 뒤에 PEF가 되판 가격은 총 1300억원. 3년간 350%의 수익률을 거둔 셈이다. 풍력장비 단조 업체인 현진소재와 용현비엠에도 각각 252억원과 173억원씩 투자해 606억원과 379억원을 회수했다. 원금의 두 배가 넘는 수익이다.

칸서스인베스트먼트가 설립한 '칸서스인베스트먼트 3호' PEF의 메디슨 M&A도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국내 벤처 1세대 기업인 메디슨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지난해 삼성전자에 3000억원이 넘는 가격에 되팔았다.

기업구조조정 분야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는 PEF 운용사인 큐캐피탈파트너스가 성공한 대경테크노스(DKT) M&A도 국내 PEF의 성공 사례 중 하나다.

플랜트 기자재 업체인 대경테크노스는 지난 2005년 법정관리 신청 후 상장 폐지되며 큐캐피탈파트너스에 매각됐다. 매각 후 1년여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했고, 지난해 GS그룹의 계열사인 GS글로벌에 645억원에 팔렸다.

그러나 PEF들이 늘 장밋빛 수익률만 올리는 건 아니다. 한국투자금융지주의 계열회사인 코너스톤에퀴티파트너스는 3600억원에 소주업체 대선주조를 인수했는데 "너무 비싸게 샀다"는 고가(高價) 인수 논란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수차례 매각이 무산됐고, 현재도 매각이 진행 중이다. 신한PE의 셋톱박스업체 셀런에 대한 투자도 실패한 사례로 꼽힌다.

☞ 사모투자펀드(PEF·Private Equity Fund)

소수의 고액 투자자들로부터 수백억~수조원의 자금을 장기로 조달한 뒤, 주식이나 부동산, 부실채권, 기업경영권 등 돈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고 팔면서 높은 투자 수익을 노리는 펀드를 말한다. 회사를 인수한 다음에 경영권을 확보한 뒤 가치를 높여 되팔아 수익을 남기는 ‘바이아웃(Buy Out)’ 형태의 투자 전략을 쓰는 펀드가 많다.

토종 사모투자펀드(PEF·Private Equity Fund)가 제도 도입 6년여 만에 굵직한 빅딜을 따내면서 대한민국의 금융 전사(戰士)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래에셋맵스운용 PEF가 휠라코리아와 함께 세계적인 골프공 '타이틀리스트'와 골프화 '풋조이' 브랜드를 보유한 미국의 '아쿠쉬네트'를 인수한 것이다. 순수한 국내 자본으로 만들어진 토종 PEF가 세계 1위 브랜드를 인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블랙스톤·칼라일·KKR 등 외국 펀드들이 독주하는 글로벌 인수·합병(M&A)시장에서 토종 PEF가 대한민국 자본의 첨병에 서게 된 것이다.

◆국내 PEF, 29조원으로 팽창

PEF는 국경을 마구 넘나들면서 은행·자동차·호텔·패션 심지어 햄버거 회사까지 돈 될 만한 기업이라면 어디든 달라붙는다. 그래서 PEF엔 '자본주의의 새로운 제왕'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선 이미 1990년대부터 무섭게 팽창하면서 금융시장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주인공 리처드 기어가 맡았던 역할이 바로 PEF 운영자였다. 영화에서 리처드 기어는 유망한 기업을 찾아내서 키운 다음 조각조각 내어 팔아서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

우리나라에서 국내 PEF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2004년 12월이다. 미국계 론스타나 뉴브리지 같은 외국의 거대 PEF들이 외환은행과 하나로통신 등 국내 기간산업까지 먹성 좋게 먹어치운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6년여 동안 국내 PEF시장은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했다. 지난 4월 말 현재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PEF는 164개다. 이들에 출자하기로 한 자금은 29조원에 육박한다.

국내 1호 PEF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주도했다. 2004년 12월에 1400억원 규모로 설립됐고, 성진지오텍이나 신우 등의 6개 회사에 투자했다. 지난해 5월 수익률 25.9%(캐피탈콜 기준)로 청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