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갤러리·극장·카페… 젊은이도 즐겨찾는 '백발'들의 문화살롱

25일 커피 향이 산뜻한 서울 종로구 경운동의 북카페 삼가연정(三嘉連亭). 스타벅스·카페베네 등 프렌차이즈 커피숍에 버금가는 깔끔한 분위기를 가진 '삼가연정'에 들어서니 '백발의 바리스타' 4명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서 오세요"라고 맞이했다. 진한 아메리카노, 부드러운 카푸치노, 달콤한 캐러멜 마키아또 등 다양한 커피를 익숙한 손놀림으로 만들어 점심시간을 맞아 몰려든 손님에게 서빙했다. 바리스타 김영출(69)씨는 "나이 많은 사람이 앞치마 두르고 커피 만드니까 처음엔 어색해하던 젊은 손님들이 이제는 '분위기가 부드럽다'며 다른 커피숍보다 더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2009년 8월에 문을 연 27석 50㎡(약 15평) 규모의 '삼가연정'은 전문교육을 받은 60세 이상 바리스타 12명이 꾸려나가고 있다. '책·사람·차 세 가지의 아름다움이 이어지는 정자'란 뜻을 가진 고용노동부 지정 사회적 기업이다. 지난해 2억1051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2억7000만원을 목표로 삼았다. 아늑한 분위기에 커피값이 2000~3000원 정도이다 보니 젊은 층에 인기를 끌고 있다. 주변 직장에 다니는 손님 이윤미(34·여)씨는 "여기 어르신들은 일반 커피숍 직원보다 더 친절하고 커피를 정성스럽게 타주셔서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삼가연정'을 비롯해 노인을 중심으로 한 갤러리와 영화관, 전용 상담센터 등이 들어서면서 종로3가부터 안국역 일대가 '실버벨트'를 이루고 있다. 시내 100만 노인인구의 문화활동을 위해 중요한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삼가연정'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엔 지난해 10월 문을 연 갤러리 '고운님'이 있다. 서울시가 세운 132.23㎡(약 40평) 규모의 노인들을 위한 갤러리다. 작년에는 법정 스님의 유고전이 열렸고 이달 말까지 추사 김정희의 작품 40여점이 전시된다. 6월부터는 노인들이 직접 제작한 토피어리(식물을 여러 모양으로 만든 작품)가 선보여질 예정이다.

추사 김정희 전시회를 주관한 이헌서예관의 안성철(49) 사무국장은 '고운님'에 대해 "문화활동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는 노인들이 찾기에 안성맞춤"이라며 "하루 방문객 100~200명 중 40%는 일반 관람객일 만큼 노인뿐 아니라 젊은이에게도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조금 떨어진 낙원상가 4층에 있는 허리우드극장 실버영화관에선 일반인은 7000원, 만 55세 이상 어르신과 동반객은 2000원만 내면 고전 명화(名畵)를 감상할 수 있다. 2009년 6만2861명, 2010년엔 이보다 83%나 증가한 11만4747명이 이 영화관을 찾았다. 26일까지 최은희·김진규 주연에 신상옥 감독이 1960년에 만든 '이 생명 다하도록'을, 27일부터 6월 2일까지는 로널드 콜먼, 그리어 가슨이 나온 1942년 작 '마음의 행로'를 상영할 예정이다.

실버벨트 조성은 서울시에서 실시한 노인 욕구조사(2008년)와 종로·탑골공원 이용 실태조사(2009년) 결과를 기반에 두고 2009년 하반기부터 집중적으로 진행됐다. 당시 결과를 보면 서울시 거주 65세 이상 노인들은 건강(38.4%) 다음으로 문화활동(28.4%)을 바라고 있었다. 또 이들은 시내에 공연장(69.5%), 무도장(33.5%), 전시장(24%) 등의 시설이 만들어지길 원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버벨트에 여가를 위한 문화시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생활용품 등을 파는 은빛행복가게는 노인 6명이 운영하며 지난해에만 6800만원을 번 사회적 기업이다. 서울노인복지센터 내에 있는 '탑리서치'는 노인 31명이 전문 조사요원으로 활동하며 지난해 1억2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들 사회적 기업에서 나온 수익은 전액 매장 운영비와 노인복지사업에 쓰인다.

'삼가연정' 인근의 상담센터에선 황혼이혼, 자녀와의 갈등부터 상속·세무 문제까지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전문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2010년에 4089건의 상담이 진행됐을 만큼 노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