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헌표의 암환자로 행복하게 살기] [5] ‘암환자 사랑방’ 어디 없나요?

지난주 서울 광화문의 한 빌딩에서 대한암협회가 주최한 '암 예방을 위한 항암식탁 프로젝트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암 예방을 위한 건강밥상 만들기' '행복한 암 치료-암 보완요법' '내 안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치유 웃음 성공학' 등이 강의주제였습니다.

강의 1시간 전부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강의실 좌석 350개는 물론 연단 앞바닥까지 사람들이 꽉 들어찼습니다. 어떻게든 들으려고 했지만 서 있을 공간도 없어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착순 500명에게 나눠주는 '항암식탁 프로젝트' 책자가 순식간에 동나는 바람에 항의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50대가 넘어 보이는 암환자와 그 가족이었는데, 그렇게 많은 분들이 올 것이라고 저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암이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암 환자와 가족들은 막대한 경제적 비용도 감수해야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고통이 사실 더욱 큽니다. 느닷없는 암 진단에 우선 큰 충격을 받고, 그다음엔 차분히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수술과 치료에 들어갑니다. 힘겹게 치료를 마쳐도 심신이 피폐해져 회복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병원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도와주지만 환자와 가족들의 불안감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책과 인터넷의 암환자 동호회 등을 통해 투병(鬪病) 정보를 구하던 중 충북 청원의 '성모꽃마을'을 소개받았습니다. 가톨릭재단이 운영하는 암 호스피스 시설입니다. 환자에게 투병 요령을 가르쳐주고 요양처도 제공해주는 곳입니다. 처음엔 망설였습니다. '회생이 어려운 말기암 환자들도 있다는데, 다른 암 환자 만나면 어두운 이야기만 할 텐데, 상실감이 커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5박6일짜리 교육을 듣기로 했습니다. 분위기는 생각했던 것과 딴판이었습니다. 40여 명의 교육 동기생은 물론 그곳에서 장기요양 중인 분들도 환자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힘들 만큼 표정이 밝았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정성껏 차려준 건강식을 먹을 때마다 환하게 "고맙습니다"를 외쳤고, 논두렁길·숲길을 함께 걸으며 "나는 살 수 있다"고 소리질렀습니다. 아침마다 명상음악을 듣고 기도실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게 제겐 큰 기쁨이었습니다. 쑥뜸을 뜨고 수지침도 맞고 매일 밤마다 족욕(足浴)을 하니 잠을 푹 잘 수 있게 됐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서로의 아픔과 고민거리를 이야기하면서 삶의 희망이 새록새록 커지고 있다는 것을 서로가 느꼈습니다.

암환자와 가족들이 주로 가입하는 한 인터넷 카페의 회원 수는 9만명이 넘습니다. 암을 극복한 분이 직접 운영하는 인터넷 동호회도 꽤 있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체험담과 투병기를 올리는 곳입니다. 오랜 투병 끝에 건강을 완전히 되찾았다는 글에는 모두 환호하고 자기 일인 양 기뻐해 줍니다. 하루 일과(日課)는 어떤지, 뭘 먹었는지, 운동은 어떻게 하는지,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물론 가슴 아픈 사연도 많습니다. 저랑 채팅도 하고 댓글도 주고받던 어느 젊은 엄마는 입원 치료와 퇴원을 반복하다가 결국 세상을 떴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걱정해주고 격려하는 글을 읽을 때마다 고마워했습니다.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한 이후 저에게도 적지 않은 이메일이 옵니다.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족욕을 하려는데 어느 제품을 이용하면 좋은지, 질문이 아주 구체적입니다. 생활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는 제 글에 공감하는 분이 많습니다. 전문적인 의료지식에 관한 것만 아니라면, 제 경험을 토대로 성의껏 답장해 드리고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그분들의 불안을 덜어 드릴 수 있다면, 그리고 막막한 현실을 헤쳐갈 용기를 드릴 수 있다면 제게도 큰 기쁨입니다.

서울대병원이 지난 3월 지하 4층·지상 6층의 암 전문병원 문을 열었습니다. 최첨단 시설을 갖췄다고 합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도 2013년이면 지하 6층·지상 15층짜리 암 전문병원이 들어섭니다. 검사부터 치료까지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해진다죠. 최첨단 빌딩에 어울리진 않겠지만 그 안에 작은 쉼터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접수 같은 번거로운 절차 없이 드나들 수 있고, 시간 제약 없이 실컷 묻고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곳. 환자들끼리 고민을 나누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사랑방 같은 따뜻한 곳 말입니다. 이왕이면 위압감까지 느껴지는 암병동이 아예 다른 용도로 바뀌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암환자가 한 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줄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