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정글이었고 인생은 지옥이었다

누구나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원형(原型)의 시(時)공간이 있다. 자신의 인생에 큰 획을 긋고 마음을 성장시킨 그 시기는 얼핏 그리움으로 회상되지만 내심에는 잊지 못할 슬픔이 진하게 배어 있기 마련이다.

'굿바이 보이'는 세상에 눈 떠가는 소년 이야기를 1980년대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풀어낸 성장영화다. 이문세의 히트곡 '소녀'와 죠다쉬 청바지가 유행하고 5공 청문회와 최루탄이 등장하는 80년대를 살아낸 지금의 30~40대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어왔는지 보여준다.

김기덕 감독의 연출부에서 시작해 송일곤 감독의 조감독을 거친 충무로의 신예 노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 같은 인생'이란 제목으로 상영돼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1980년대 말 열여섯살 중학생 진우(연준석)는 술주정뱅이에 만년 백수인 아버지(안내상), 그런 아버지를 차마 버리지 못하는 엄마(김소희), 그리고 가족에 대한 증오와 세상에 대한 분노를 품고 살아가는 고등학생 누나(류현경)와 함께 청소년기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아버지는 딸의 돼지저금통을 훔쳐 술값으로 쓸 정도의 파렴치한으로 가족의 생계엔 무관심하다. 홀로 생계를 꾸리는 엄마를 보고 신문배달을 시작하는 진우는 신문배급소에서 악착같이 돈을 버는 창근(김동영)을 만나 담배와 술, 여자를 접한다. 아버지 대신 세상 사는 법을 가르치는 창근을 통해 본 세상은 모든 게 낯설고 거칠기만 하다. 달콤했던 유년기를 지나 세상은 창근의 말처럼 '장글(정글)'로 다가온다. 첫사랑도 그렇고, 이별과 배신도 어설프고 아프다.

영화는 80년대 현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지만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는 리얼리즘 화법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배다른 형을 만난 이후 진우가 누워 있던 마당의 평상이 하늘로 떠오르는가 하면, 난생처음 목격한 전경과 시위대의 충돌 장면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렇잖아도 비루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환상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통해 오히려 그 상황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영화 중간 진우의 내레이션도 거리 두기를 통해 영화가 단순한 회고담이나 감상(感傷)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흥행 300만명'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강형철 감독의 '써니'가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여학생들의 유쾌한 추억담이라면, 이 영화는 남학생들의 거친 성장기라고 할 수 있겠다. 6월 2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 이것이 포인트

#장면

만년 백수인 아버지 경식이 집 앞마당 평상에서 기타를 치며 이문세의 ‘소녀’를 열창하자 아내 문정이 따라 부르며 두 사람의 행복했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대사

“노 데인저, 노 머니! 오케이? 세상은 말야, 장글이야 장글…”(신문보급소에서 만난 창근이 짧은 영어 실력으로 진우에게 자신의 인생철학을 설명)

이런 분들 보세요

세시봉에 열광하며 80년대 추억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