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上屋抽梯

〈제9보〉(140~167)=흑이 ▲로 치중해 온 장면. 백의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참고1도 1로 막아 쌍방 평화 공존을 지향하는 것. 이것이라면 매우 미세한 계가가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실전처럼 140쪽에서 막아 일전을 불사하는 작전. 화통한 전투를 통해 큰 전과를 올릴 수 있지만 대신 스스로의 위험도 각오해야 한다. 잠시 고심하던 박영훈, 140으로 두어 후자를 택했다. 이 바둑의 종반이 격랑에 휩싸이게 만든 출발점이었다.

140은 병법 삼십육계에 나오는 상옥추제(上屋抽梯)란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지붕으로 유인한 뒤 사다리를 치운다.' 그런 계략 아래 비장함도 번뜩인다. 상대의 약점을 본 흑은 곧장 지붕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142로 참고2도 1이면 8까지 패(覇)가 필연. 이 패는 전국적으로 흑의 팻감이 많은 데다 패에 졌을 때 백의 피해가 크다.

흑이 161로 지붕에서 내려가려 하자 백은 162, 164로 사다리 제거에 나선다. 정상적으로 수를 메운다면 백이 한 수 빠른 수상전. 하지만 흑도 167이란 비상수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백 '가'엔 흑 '나'의 패로 받겠다는 뜻. 흔히 말하는 천지대패다. 사다리가 치워진 드높은 지붕 위에서 대판 싸움이 불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