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반한 '아코디언의 역사'를 듣다

심성락(74). 일반 대중에겐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아코디언 반주를 담아 가요를 발표한 가수들에게 그는 '전설(傳說)'로 통한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나온 숱한 가요들의 아코디언 연주를 대부분 그가 책임졌기 때문이다. 패티김·이미자·조용필·나훈아·남진·송대관·태진아·신승훈·이은미·김건모·유리상자…. 그와 작업한 가수들의 이름을 나열하면 한국 대중음악사가 한 줄기로 정리될 정도다. 2000년대 이후에는 '봄날은 간다' '효자동 이발사' '인어공주' 같은 영화를 통해 애절한 아코디언 연주를 들려줘 젊은 대중까지 감동시켰다.

그는 '대통령 사적(私的) 모임의 단골 반주자'이기도 했다. 1970년대 초반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1990년대 초반 노태우 정권 때까지 20여년간 대통령이 참석하는 청와대 비공식행사의 반주를 전담하다시피 했다.

이런 '아코디언 연주의 살아있는 역사'를 위해 가요계 후배들이 헌정공연을 마련했다. 사단법인 한국음악발전소가 주최하는 '심성락 헌정공연―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다. 6월 26일 오후 5시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다. 장사익·최백호·주현미·JK 김동욱·적우 등 다양한 장르의 유명 가수들이 오직 한 사람, 심성락을 위해 모인다.

◆청와대 전담 반주자

"고맙기도 하지만 부끄럽기도 합니다. 제가 후배들한테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최근 전화로 인터뷰에 응한 심성락씨는 쟁쟁한 후배 가수들이 자신을 위해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감격에 겨운 목소리였다.

심씨는 6·25 전쟁으로 피란민이 몰려왔던 부산에서 경남고등학교를 다니며 처음 아코디언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귓가에 들리는 노래에 조금이라도 아코디언 연주가 들어가면 마음이 흥분돼 어찌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잘 알고 지내던 한 악기점에서 독학으로 연주를 배우게 된 뒤에는 학교도 그만두고 평생을 연주자로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1950년대 후반 부산 KBS 노래자랑대회에서 처음으로 남들 앞에서 연주하게 된 그는 이후 50여년간 국내 최고의 아코디언 장인으로 인정받았다. '지독한 애수(哀愁)가 흘러넘치는 한국적 선율'. 전문가들은 그의 음악을 이렇게 평했다. 심씨 자신은 "음표 하나하나에 자신의 온 감정을 쏟아넣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연주해왔다"며 "우리 정서에 맞는 연주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했다.

심씨가 70년대 초반부터 20여년간 '대통령의 반주자'로 활동하게 된 데에는 김종필 전 총리와의 개인적 인연이 계기가 됐다. 김 전 총리가 11대 총리를 맡았던 1970년대 초 공관에 최신 전자오르간을 사다 놓고 사용법을 배울 '선생님'으로 심씨를 초대했다고 한다. 심씨는 "김 전 총리가 평소 친분이 있던 작곡가 이봉조씨에게 적당한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하자 이씨가 '대한민국 건반 연주자 중 최고인 사람'이라며 나를 추천한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JP는 심씨의 연주에 반해 나중에는 청와대에까지 소개해줬고, 이후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까지 20여년간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각종 비공식행사의 반주를 도맡았다는 것이다. 심씨는 "대통령 직계 가족들의 공관 모임, 대통령 자녀들 결혼 상견례 뒤의 뒤풀이 자리나 결혼 피로연, 대통령 부부의 생일 모임, 국내외 정치인들을 초청한 비공식만찬 여흥 행사 등에서 아코디언이나 전자오르간을 연주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대통령들과의 사적(私的) 대화나 다른 인연에 대해선 "그런 건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난청의 약점을 이겨내다

그는 인간승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초등학생 시절 유리 조각에 찔려 오른쪽 새끼손가락의 절반을 잃었으며 60년대 후반에는 사고로 오른쪽 귀의 고막이 찢어져 지금까지 난청에 시달리고 있다. 건반악기 연주자로서는 신체적으로 큰 약점을 안고 있는 셈이다. 그는 "특히 손가락이 온전치 않아 고충이 많았다. 연주가 아예 불가능한 곡도 있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며 "그만큼 아코디언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지금껏 음악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음악발전소 대표로서 이번 공연을 기획한 최백호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전설로 기록될 분과 같이 공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라며 "1960~80년대 음악인들은 아코디언 하면 모두 심성락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고 했다. 적우는 "심 선생님은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연주를 하기 때문에 듣는 이 누구에게나 큰 감동을 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