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의 세상읽기] 태화산 老목사는 대안학교에서 무슨 꿈을 꾸는 걸까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 태화산(太華山)이 있다. 해발 641m 줄기가 뻗어 있는데 갈수록 심산유곡(深山幽谷)에, 볼수록 진경(珍景)이다. 맑은 시내를 낀 야영장을 지나 산 끄트머리에 밭 4000평이 있고 뒤에 건물이 서 있다.

'태화국제학교'라는 간판이 없으면 꼭 기도원 같은 분위기다. 학생 70명과 선생님 35명은 2007년 1월 개교한 여기에서 함께 공부하고 함께 밭에서 키운 무공해 야채를 먹고 함께 잔다.

이 대안학교가 올해 처음 고교과정 졸업생을 냈다. 그런데 과외는 엄두도 못 낼 산골 학교생 전원이 인디애나·뉴욕·미네소타 같은 미국 주립대에 합격했다. 종일 공부하니 그럴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결코 학생을 기름 짜듯 쥐어짜진 않는다.

이 학교의 교훈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교육이념이 '믿음·소망·사랑'이다. 영어로 성서를 읽고 1년에 2박3일 영성수련회도 갖는다. 입학시험 때 영어·국어 시험을 보지만 그보다는 인성시험 성적을 으뜸으로 친다니 종교학교 같기도 하다.

이사장 박만용(朴萬用·74)은 목사(牧師)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은퇴한 목사다. 그는 경기도 화성교회에서 10년, 수원교회에서 34년 동안 시무했다.

경북 김천에서 1935년에 태어난 그의 호적은 3년 뒤에야 올려졌다. 워낙 병약(病弱)했던 탓이다. 그는 숫자 '3'과 인연이 깊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6·25 전쟁이 터져 3년간 놀고 나니 동창 정해창(전 법무부장관)은 중3이 돼 있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교장이던 시절 대구 성의고에 진학해 한 의대에 합격했지만 사정 때문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 뒤 용문산기도원에서 3년간 하나님을 찾으며 화를 달랠 때 그의 부모는 "왜 예수쟁이가 되려느냐"며 화를 돋웠다.

이 불우한 청년의 호소가 통했는지 감리교 신학교에 입학할 길이 열렸다. 그때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교단장(敎團長)이 되자, 학교를 세우자, 병원을 만들자였다. 그는 "감리교 감독(監督)을 했으니 첫 목표는 얼추 이뤘다"고 했다.

 

1980년대 초 그는 태화산에 기도원을 만들었다. 3만평이 그야말로 봉사(奉仕)가 이룬 기적의 현장이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돌 하나 옮기고 벽돌 한장 쌓았다. 그게 나중에 학교가 된 걸 보면 운명(運命)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박만용은 몇 년 전 철갑상어 100마리를 연못에 뿌렸다. 잘 키워서 학교에 보태려 벌인 일인데 하필 그해 추위가 혹독했다. "아이고! 하나님, 새끼 철갑상어 다 죽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한 뒤 분수 옆으로 엉금엉금 기어갈 때였다.

철갑상어를 살피는 순간 '짝' 미끄러지면서 그의 대퇴부 관절도 짝 부러지고 말았다. 몸속에 인공뼈를 박은 노(老)목사가 과거를 회상하더니 꿈꾸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덕에 철갑상어가 30마리는 살았어요. 근데 이 자리엔 7층 새 건물 짓고 그 아래엔 병원을 만들 겁니다.…"

'크리스천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외국출장 때였다. "신앙이 돈독해 인성 바르고 외국어 잘하면 최고잖아요. 우리 학교에선 영어·중국어·일본어·스페인어를 가르칩니다. 한국어까지 5개 국어를 하는 셈이지요."

은퇴 후 그는 병원을 만들려 했다. 그런데 한 사기꾼의 농간 때문에 방향을 틀게 됐으니 그것도 육영(育英)의 원대한 예고 속에 포함된 것일까. "사기꾼들이 퇴직교사와 공무원의 예금통장을 보면 자기 것이라고 한다지요. 목사도 같습니다."

어느 날 지금의 학교 건물에 중년부인이 찾아왔다. 그녀가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피는 게 수상해 물어보니 이런 답이 나왔다고 한다. "남편이 이 요양병원장으로 올 거예요." 누군가 박 이사장의 계획을 알아내 사기 치고 다닌 것이다.

화들짝 놀라서 학교로 방향을 틀었지만 목사 뒤에 항상 착한 학생이 따르란 법은 없다. "처음엔 말썽쟁이들이 많았어요. 지금 학교 안에 있는 문이 전부 철제(鐵製)지요? 나무로 만들었더니 하도 주먹으로 치고 다녀서 다 바꿨지요."

밤에 탈출해서 노래방 가는 아이, 술·담배 즐기는 아이, 입산생활을 오히려 즐기던 아이들이 떠나고 혹은 개과천선(改過遷善)했다. 산이 요란한 굉음 없이 더러운 걸 정화(淨化)하듯 참고 기다리니 절로 학교에 좋은 아이들만 가득 찼다고 한다.

13세기 몽골족 황제가 꿈에서 본 궁전을 지었다. 18세기 영국 시인은 그게 꿈에서 비롯된 걸 모르고 궁전에 대한 시를 꿈꿨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겸 시인 보르헤스가 '시인 콜리지의 꿈'에서 읊은 걸 보면 꿈은 삶이 세월에 녹슬지 않도록 하는 소금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런저런 대안학교가 200개가 넘는다. 그중엔 정품도 있고 짝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명품'만 남게 될 것이다. 산길을 내려오며 태화산 노인이 보는 미래가 기자의 눈에도 보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