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 30년 이정빈 교수 '마지막 수업'

"의대 교수라고 하면 흰 가운 입고 있을 줄 알지만 법의학은 달라요. 제 얼굴 보세요. 형사반장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정빈(65) 교수는 30일 아이패드에 담긴 변사체 사진들을 보여주며 "법의학은 죽음을 다루지만 언제나 살아 있는 현장을 만나는 학문"이라고 했다. 그의 아이패드에는 두피(頭皮)가 벗겨진 시신, 목을 매 자살한 사체, 배를 갈라 드러난 내장 등 검찰·경찰에서 감정을 부탁한 사진들이 가득했다.

"지난 주말에도 검찰에서 4건이나 자문을 부탁해 왔어요. 골치 아픈 사건이 있으면 이렇게 아이패드에 사진을 넣어 들고 다니면서 이리저리 들여다봐요. 한번 보실래요? 얼마나 재미있는데…."

30년간 살인 등 강력사건의 의학적 의문에 답해 온 이 교수가 오는 8월 정년 퇴임한다. 이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가진 법의학 강의가 그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이 교수는 군 제대 후인 1980년 서울의대 병리학교실 조교수로 임용됐다. 당시의 법의학은 병리학의 한 부분으로 취급됐다. 그는 "1970년대 말 오탁근 검찰총장이 '서울대도 이젠 법의학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해 법의학교실 개설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했다. 이 교수는 1982년 서울대에선 처음으로 미국으로 가 1년간 법의학을 정식으로 공부하고 돌아왔다.

그가 30년 동안 검안·부검한 사체의 수가 1000구에 이른다고 한다.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 사건(1981년)을 시작으로 연세대 이한열군 사망 사건(1987년), 성균관대 김귀정양 사망 사건(1991년)과 같은 시국사건들, 그리고 상명여대 이진분 교수 살인 사건(1993년)과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1995년), 근래의 강호순 사건(2009년) 등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쳤다.

"시국사건을 맡았을 땐 분위기가 살벌했죠. 지금 돌아보면, 수사기관에선 어차피 자기들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거나 절대 자기 잘못이 아닌 사건만 외부 사람인 저한테 감정을 맡긴 것 같아요. 학생이나 재야(在野)의 판단과 다른 부검 결과가 나오면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논란거리인 사건일수록 냉철하게 대하고 법의학 지식 안에서만 판단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법의학을 일종의 '퍼즐 맞추기'라고 했다. 사망 당시의 현장과 부검을 통해 죽음을 둘러싼 상황을 퍼즐 완성하듯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법무연수원이나 경찰수사연수원에서 강의할 때 '반드시 부검하라'고 얘기해요. 수사와 법의학은 의존이 아니라, 공존 또는 상호의존하는 관계입니다."

그는 퇴임 후 계획을 묻자 "어떤 법무법인에서 오라고 하더라"며 마치 남 얘기하듯 했다. 이정빈 교수는 "법무법인에 들어가 법의학 지식으로 의뢰인들이 무죄나 감형받도록 도와주면 돈을 꽤 많이 받겠죠?"라고 묻곤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더니 씩 웃으며 얘기했다. "돈 벌려고 했으면 의대 나와서 개업(開業)했지, 법의학 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