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암흑기'에 양심수 변론 한 시대를 낱낱이 기록하다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가 세상에 빛을 본 것은 1976년 12월 23일 법정에서였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중략)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담당 변호사는 4시간에 걸친 최후 변론 끝에 이 시를 낭송한 후 말을 맺었다. "우리는 위에 읽은 김지하의 짤막한 시 한 편에서 그의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중략) 부디 이 법정의 판결이 피고인의 이 진실을 극명하게 빛 속에 드러내는 훌륭한 판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권변호사' 홍성우(73)였다. 그가 1970~80년대를 증언한 책 '인권 변론 한 시대'(경인문화사) 출판기념회가 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민주화 운동가들의 '홈커밍 데이' 같았다. 박형규 목사, 이수성 전 총리,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축사했고 이재수 감독의 기록영화 상영, 강은일 서울예대 교수의 해금 연주에 이어 이철·유인태·이부영·정성순·문용식 등의 좌담회가 있었다. 홍 변호사는 답사에서 "20년 가까이 양심수들 변호인석에 선 이유는 첫째, 그들의 신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고 둘째, 기자도 법정에 들어올 수 없던 시절 역사의 증언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고 말했다.

780쪽에 이르는 책은 유신과 5공 '사법부 암흑기'에 그가 맡은 시국사건들을 회고한다. 민청학련 사건부터 김지하 필화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전두환·노태우 내란죄 등 당대를 뒤흔든 사건들이다.

처음 소개되는 일화도 적지 않다. '타는 목마름으로'만 해도 김지하 시인의 원주 집에 방치돼 있던 것을 홍 변호사가 최후 변론에 넣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인권변호사들과 정겹게 담배를 나눠 피우는 사진, 홍 변호사와의 '평생 비밀'도 공개된다.

책은 홍 변호사가 모아둔 변론 자료(1207종 4만6000쪽)를 토대로, 한인섭(52) 서울대 법대 교수가 홍 변호사와 100시간 넘게 대담한 기록을 더했다. 한 교수는 "개인의 증언록을 넘어선, 한 시대의 기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