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라 LG배, 이번엔 한국으로 모셔올 테니…"

오랜만일세, 'LG배'군(君). 자네가 세계기왕전 우승의 상징으로 활약해온 지 벌써 16년째를 맞네. 매년 초 시상식 때 자네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벅찬 감격의 순간을 만끽하는 것은 이제 전 세계 '바둑귀신'들 모두의 꿈이 됐다네. 그들이 까짓 2억5000만원 우승상금이 탐나서 그러겠는가. 자네를 손에 넣어야만 세계 최정상 프로로 공인받는 시대가 됐네.

올해도 세계를 대표하는 최고수 32명이 6월 13일부터 경기도 광주(廣州) 곤지암리조트에 모여 첫 라운드에 들어간다네. 돌이켜 보면 근년 들어 자네의 심술도 보통은 넘었지. 2009년 제13회 대회 이후 작년까지 3년 연속 중국 기사들의 손만 잡아준 것은 무슨 심보였는가. 자네 친구들(다른 기전 우승컵)은 그러지 않더라만.

하지만 나는 요즘 자네의 깊은 속뜻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네. 지난 15년 동안 자네의 행선지는 한국이 7회로 가장 많았지. 중국 5회, 일본 2회, 대만도 1회 정상을 맛봤어. 동양 4강이 이처럼 골고루 '황금분할'한 국제대회는 오직 LG배뿐이더군. 자네가 한때 자만에 빠졌던 한국 바둑에 3년 연속 경고음을 냈으니 올해는 분명히 달라질 걸세.

매년 우승자를 가려 뽑는 자네의 탁월한 안목에도 무릎을 쳤었다네. 자네는 그 어떤 강자에게도 연속 우승을 허용하지 않았어. 최다 우승(4회)의 이창호조차 연패(連覇)는 없었지. 자네가 얼마나 변화와 새 얼굴을 기다리는지 짐작되더군. 두 번씩 우승한 이세돌과 구리(古力)까지 복수(複數) 우승자가 단 3명뿐이었는데, 이 역사는 최근 10여년간 세계 판도를 정확히 축약해 주고 있지.

올해는 본선 멤버 32명 중 절반이 넘는 17명이 한국 기사라는 사실 알고 있나? 중국은 10명뿐일세. 통합예선서 한국이 모처럼 선전한 결과라네. 한국은 역대 최다인 11명이, 중국은 5명만 혈로를 뚫었지. 지난해엔 거꾸로 한국 5명, 중국 11명이 예선을 통과하는 바람에 시드자 포함해 중국 16명, 한국 11명으로 출발하지 않았었나? 한국군의 수적(數的) 열세는 끝까지 이어져 마지막 4강을 중국이 독점했었지.

이번 한국 팀은 질적으로도 최강이라네. 5월 랭킹 기준 상위 14명 중 12명이 모조리 들었을 정도지. 1위 이세돌을 필두로 최철한·박정환·허영호·강동윤·원성진·박영훈(이상 2~7위) 그리고 이창호·김지석·조한승·윤준상(9~12위)까지 가위 철옹성이야. 여기에 목진석(14위)·박정상(20위)등 중견, 박승화·한웅규·이원영·김동호 등 신예들도 자네를 만날 꿈에 부풀어 있지.

중국은 퍄오원야오(朴文堯)·쿵제(孔杰) 등 작년 대회 결승전 커플을 앞세우고 구리(古力)·셰허(謝赫)·천야오예(陳耀燁)·왕시(王檄)등이 주축을 이룰 태세라네. 장웨이지에(江維杰)·탄샤오(檀嘯)등 신예들도 만만치 않은 전력이지. 일본은 통합예선서의 전멸로 이야마(井山裕太)·장쉬(張木+羽) 등 국가 시드 4명만 나온다네. 대만 대표 천스위엔(陳詩淵)은 2007년 저우쥔쉰(周俊勳)의 기적 재현을 꿈꾸고 있겠지?

자네가 한국 출신임을 일깨울 생각은 전혀 없네. 혹시 자네가 거부해도 올해는 한국 기사들이 자네를 4년 만에 무조건 우리 땅으로 '모셔'올 모양이니 그렇게 알고 있게. 국가 간 경쟁뿐 아니라 기성(旣成)과 신예 간의 치열한 '세대 전쟁'도 즐기세. 그러다 보면 어느덧 해가 바뀌고, 결승을 거쳐 시상식장에서 자네를 만나게 되겠지? 그때까지 출전 기사 32명과 자네의 건승을 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