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노인 부양 가정에 '반값 등록금' 혜택 주자

지난 가을, 한 노인 부부가 상담을 위해 찾아왔다. 주름진 얼굴엔 슬픔과 분노, 삶에 지친 고통이 역력했다. 할아버지는 은퇴 후 유일한 재산인 상가의 임대료로 생활해 왔는데, 몇 년 전 아들이 사업자금이 급하다고 해서 상가 소유권을 넘겨준 게 화근이었다. 아들은 그 상가마저 처분해 버리고, 생활비를 주기는커녕 찾아오지도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아들을 상대로 부양료를 청구할 수는 있지만, 아들이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별 실효성이 없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들의 수명은 점점 길어지는데, 자식들 공부시키고 허겁지겁 살아오느라 노후대비를 제대로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통계를 봐도 노후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 노인의 비율이 61%나 되고, 노인의 78.3%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 50만원 미만으로 생활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에는 부양을 거부한 의사 아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생활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고. 노모 부양 문제로 다투던 시누이가 올케를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연간 24건 정도였던 부양료 청구 소송이 2004년부터 2009년까지는 한 해 최고 58건까지로 늘었고, 2010년 상반기에만 36건이 접수되는 등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자녀와의 법적 분쟁을 감수하려는 부모가 아직 소수일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드러난 소송건수는 실제 분쟁사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모를 봉양하는 문제를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법정으로 가는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부모 부양문제로 인한 가족 간 불화가 살인사건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이다.

얼마 전에는 치매와 암을 앓고 있는 60대 부부가 자식들에게 짐이 되어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자살하는 65세 이상 노인이 2009년에 4071명으로, 20년 전의 788명에 비해 5배나 늘었다고 한다. 또 최근 1년 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노인이 150만명 정도라고 한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우리 사회 이면에는 하루 평균 노인 자살자 12명,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 세계 1위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2020년이 되면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고령층으로 진입해 대한민국은 아이보다 노인이 많은 나라가 된다고 하는데, 이대로 가다간 큰일이다.

노부모 부양 문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겪고 있는 현안이면서도 좀처럼 공개 이슈화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노인 부양은 전통적으로 거의 가정에서 해결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집집마다 노부모를 모시는 문제로 형제간에 다툼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노부모가 중병(重病)이나 치매라도 앓게 되면 이를 돌보는 부담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선진국형 복지국가 달성을 부르짖는 우리 정부가 노인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지원하는 기초노령연금액은 현재 월(月) 최고 9만1200원이다. 말 그대로 용돈 수준에 불과하다. 연금 급여액을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노인들이 은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 노인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고 자존감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노인을 채용하는 기업에 세제(稅制) 혜택이나 취업보조금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정치권은 내년에 있을 대선과 총선 등을 위해 벌써부터 유권자를 사로잡을 공약을 준비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지난 17대 대선 투표율만 보더라도 저출산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20대는 줄어들고 투표율도 낮았던 반면, 50~60대 유권자의 수는 늘었을 뿐 아니라 투표율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앞으로 60대 이상 노인 유권자는 더 늘어날 터이고 노인복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노인을 주요 지지층으로 삼고 노인복지를 주요 정책으로 제시하는 정당이 출현할지도 모른다. 선심성 국책사업이나 현실성 없는 반값 등록금 말고 실효성과 진정성을 담은 노인복지 대책이 필요하다. 말이 나온 김에, 노부모 부양 의무를 잘 이행하는 가정의 자녀에게 대학 반값 등록금 혜택을 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