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때문에… 울었다 웃는 조선株

그리스 재정위기에 조선주가 울고 웃었다.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까지 제기됐던 5월에는 주식시장 평균치를 밑돌았지만 최근 그리스발 희소식에 강한 반등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증시가 약보합권에서 마감한 1일 STX조선해양이 6.3% 급등한 것을 비롯, 대우조선해양이 2.7%, 삼성중공업 2.4%, 현대미포조선도 1.4% 상승했다. 시가총액 3위로 조선 대표주인 현대중공업은 최근 5거래일 동안 16.1% 오르며 한 달여 만에 다시 50만원대에 복귀했다.

◆차·화·정 웃는 사이 휘청했던 조선주

작년까지만 해도 주도주의 한 축을 담당했던 조선주는 올 들어 자동차, 화학, 정유주의 선전을 물끄러미 바라봐야만 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지난 4월 초 장중 한때 55만원을 넘기며 사상 최고가를 찍기도 했지만 이후 줄곧 하락해 고점 대비 23%가량 떨어지기도 했다. 5월 코스피지수가 3.8% 하락하는 동안 KRX(한국거래소)조선업종 지수는 6.6% 내렸다.

조선주에 대한 외국인의 매도는 거셌다. 5월 한 달간 외국인은 삼성중공업 2700억원, 대우조선해양 2200억원, 현대중공업 1000억원씩의 순매도(전체 매도금액에서 매수 금액을 뺀 것)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국내 기관도 1800억원가량을 팔아치웠다.

증시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이 조정국면에 들어가자 큰 자금을 굴리는 투자자들이 그동안 가격 부담이 적지 않았던 조선주를 먼저 처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여기에는 국내 조선사들의 하반기 수주가 상반기에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바탕이 됐다. 이는 조선사의 실적이 1분기에 정점을 친 것 아니냐는 진단으로 이어졌다.

◆수주 부진 우려가 그리스 재정위기와 맞물려

그리스의 재정위기 우려는 조선주 부진의 정점이었다. 조선·해양 전문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123억달러어치를 발주해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선박주문을 했던 그리스는 올 5월까지 선박주문이 21억달러에 그쳐 3위권에 머물렀다. 자국의 금융위기 여파로 적극적인 해외 발주를 할 수 없었던 탓이다.

정동익 한화증권 연구위원은 "선박 발주는 해외 자금조달을 통해 이뤄지는데 재정위기로 국가 신용등급 하향 위험이 발생하면 조선 선주들도 조달금리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스는 전통적인 해양강국으로 그동안 국내 조선사의 주요 고객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경쟁국에 밀려 1위 자리 보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국의 재정위기는 치명타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그리스가 세계적인 해운국인 만큼 발주 자체는 꾸준하다"며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로는 갈수록 주춤해지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 짐 덜고 나니 눈에 보이는 호재들

그리스 재정위기 우려 해소는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그동안 움츠려 있던 투자심리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옥효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융위기 당시 시장이 한 번 휘청거린 경험이 있어 악재가 한 번 터지면 관망심리가 높아지곤 했다"며 "이번 일로 심리적인 악재요인이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고비를 넘기면서 조선주의 새로운 호재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주 우려에도 불구하고 고부가가치의 LNG선이나 컨테이너선, 해양-육상 플랜트, 신재생 에너지 관련 사업 등 국내 조선사들이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 중국의 조선산업이 기세를 올리고는 있지만 아직 단가가 낮은 벌크선(원자재 등을 주로 운반하는 화물선) 중심이어서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증권업계에선 판단하고 있다.

이진경 대우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조선경기 부진에도 경쟁력 높은 한국 조선사의 특수는 계속될 것"이라며 "판도가 재편되면서 기술 경쟁력이 높은 국내 조선사 중심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