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경험은 되레 방해"

"경험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일에 방해될 수 있다. 필요 이상 조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4년 반 재임 끝에 이달 말 물러나는 로버트 게이츠(67) 미 국방장관이 1일 미국 정치저널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두 번의 전쟁(이라크·아프가니스탄)을 이끈 것과 8명의 대통령을 보좌한 경험은 이젠 오히려 짐이 된다"고 퇴임의 변을 밝혔다. 중앙정보국(CIA) 국장 출신인 게이츠는 국방장관으로서 중동에서 전쟁을 일으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전쟁 마무리 임무를 맡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모두 성공적으로 보좌했다는 평을 듣는다.

게이츠 장관은 최근 리비아 군사개입,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한다. 결과적으론 성공했지만 경험 많은 자신이 보기엔 둘 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데다 전선(戰線)만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과 충돌한 것은 리비아전 한 번뿐이었다며 "2년 반에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요"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판에서 살아남은 방법도 귀띔했다. 첫째 아랫사람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동등하게 대할 것, 둘째 언론 때문에 괴롭더라도 때로는 언론이 옳음을 인정할 것, 셋째 솔직할 것, 넷째 너무 솔직하진 말 것 등이다. 남들을 무장해제하려면 어느 정도 솔직해야 하지만 자신을 무장해제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은 대통령과 같은 의견만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들려주는 것이 그를 진짜 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게이츠 장관은 미국이 치른 중동 전쟁의 이면과 공화·민주 양당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다. 주변에선 회고록으로 그 얘기를 풀어내라고 권유도 한다. 하지만 그는 2012년 대선 후에나 내겠다고 한다. 정치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당분간 입을 다물겠다"는 것이다.

촌철살인의 유머로도 유명한 게이츠 장관은 "미국에 대한 테러 위협이 계속되고 있는데 안보 운이 다한 것이냐"고 기자가 묻자, "물론 운은 언젠가는 다한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몇 년간 쏟아부은 기술과 돈이 얼마인데… 그게 도루묵이야 되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