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한 내 이름, 며느리 덕에 바꿨네"

"돌아가시기 전에 원래 이름을 되찾고 싶다는 시어머니의 소원을 꼭 이뤄드리고 싶었어요."

60여년 동안 '조씨(曹氏)'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조실광(曹實光·86) 할머니가 지난 1일 서울가정법원에서 개명(改名) 허가를 받았다. 이 법원에 매년 1만여 건의 개명 신청이 접수되지만 이름이 '씨'인 경우는 할머니가 처음이라고 한다.

할머니 이름이 '씨'가 된 것은 6·25 전쟁 때 충북 영동군 면사무소가 폭격을 맞아 호적이 모두 잿더미로 변하면서 시작됐다. 시아버지가 호적을 다시 신고하면서 며느리의 이름을 '조씨'로 올린 것. 할머니는 "충청도 양반인 시아버지는 '시집간 여자가 무슨 이름이냐'며 나와 성(姓)이 같은 시어머니(작고)의 이름까지 모두 조씨로 호적에 올렸다"고 말했다.

이후 할머니는 은행, 병원 등에서 "조씨님"이라고 불릴 때마다 민망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했다. 한 병원에서는 "성이 아니라 이름을 말씀하시라니까요"라고 따지는 간호사와 다툰 적도 있었다.

2남3녀를 모두 결혼시키고 노인복지회관과 성당에 나가는 등 뒤늦게 바깥 활동이 잦아지면서 이름이 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노인대학에서 중국으로 단체여행을 떠났을 때는 가이드에게 여권에 적힌 이름을 부르지 말고 따로 이름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름 때문에 불편하고 민망하다"는 할머니 말을 흘려듣지 않고 직접 나선 것은 막내며느리 김정순(43)씨였다. 김씨는 "어머님은 '지금껏 이렇게 살았는데 나이 들어 뭘 바꾸느냐' 하시지만 이름은 돌아가신 뒤에도 남는 거잖아요"라고 설득했다.

주부인 김씨는 법무사 경비 50만원을 아끼기 위해 직접 동사무소와 경찰서 등을 다니며 관련 서류를 마련했다. 그리고 어머니 소원을 이루는 마음으로 또박또박 쓴 신청서를 지난 4월 서울가정법원에 제출했다.

며느리 덕에 되찾은 '실광'이란 이름은 손(孫)이 귀했던 집안에서 '열매처럼 단단하게 빛나라'는 뜻으로 할머니의 부친이 직접 지은 것이라고 한다.

할머니는 "어릴 적 '실광이' '실광이'라고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마다 아버지는 '우리 딸 이름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라고 말씀하셨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2일 서울가정법원을 찾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곧바로 주민등록증과 은행 통장, 여권 등의 명의를 바꾸기 위해 개명 허가서를 들고 손을 맞잡고 주민센터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