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1920~2004)은 그림과 골동에도 조예가 깊어 인사동에서 골동점 '아자방'을 운영했다. 안경집, 향낭, 목걸이 같은 수공예품을 쉼 없이 첫딸에게 구해줬다. 어느 날 인사동에서 조선시대 앉은뱅이 책상을 봤다. 딸은 "내가 먼저 봤으니 내 것"이라 했고, 아버지는 "너 같은 시로도(입문자)가 가질 게 아니다"라 했다.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을 만큼 '아름다운 것'에 대한 고집은 부녀가 위아래를 재기 힘들었다. 그 딸은 이제 예순다섯. 생애 처음으로 전시회를 연다.
서울 팔판동에서 복합문화공간을 운영 중인 김훈정씨가 3~12일 H-WORKS에서 장신구전 '장신구의 신화'를 연다. 김씨는 미술전공자가 아니다. 그러나 외국어대 불어과를 다니면서도 쇠뿔을 구해 동네 철물점에 가서 자르고, 불질을 해서 구부려 팔찌를 만들어 쓸 정도로 오랫동안 장신구를 만들어왔다. 비전공자라는 결핍을 '결코 쉬지 않는 손'으로 이겨냈다. 김씨는 첫 전시에서 구슬, 가죽, 금속, 플라스틱, 비즈 등 다양한 물성의 재료로 장신구 400~500점을 선보인다. 김씨의 요즘 주재료는 가죽. 김씨는 "가공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요즘 가죽은 헝겊보다 더 부드럽다"며 "조그맣게 오려 인두질하고, 한땀 한땀 패치워크를 하면 회화적 요소가 뛰어난 장신구가 된다"고 했다. 김씨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02)723-6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