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영화 만들게 하는 건 日 사회에 대한 위화감"

―소설의 어떤 점에 끌렸나.

"2008년 봄에 책을 봤는데 등장인물과 일본 사회에 대한 생생하고도 디테일한 묘사가 좋았다. 작가가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해 같이 썼다."

―주·조연 연기가 훌륭하다.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톱스타인) 츠마부키 사토시가 남자주인공 역을 하고 싶다고 연락해 왔다. 남자주인공을 고민하면서 그를 떠올리진 않았기 때문에 좀 의외였지만 내가 생각지 못한 면이 있을 것 같아 캐스팅했다. 후카츠 에리는 책을 읽은 뒤 여주인공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배우였다."

―사회의 중심부보다는 주변부를 자주 다룬다.

"원래 흥미가 있다기보다는 흥미를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살면서 놓치거나 스쳐 지나는 게 많은데 멈춰 서서 그런 것을 봐야 하지 않나. 모두가 '당연히 이렇지 않겠어?'라고 단정 지을 때 위화감을 느낀다. 일본 사회에 위화감을 느끼고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데는 재일동포라는 정체성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맡았다.(히사이시는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박광현 감독 '웰컴 투 동막골' 등의 음악을 맡은 거장이다.)

"학생 때부터 동경했고 언젠가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다. 메이저 회사랑 일하는 이 기회에 부탁해보자고 생각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다. 거장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것, 새로운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동경하는 거장과 일하니 좋던가.

"(한국말로)고생 많죠. (다시 일본어로) 하고 싶은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음악 작업실에서 일주일간 유령처럼 말없이 서 있었다. 그래도 남자에겐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는 법이다. 감독님의 음악에는 강한 감정이 담겨 있는데 음악이 배우들보다 앞서 감정 표현을 하지 않도록 조율을 해야 했다."

―데뷔작 '청' 이후로는 영화에 재일동포로서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조선학교를 나와 20대 초반에 사회에 발을 디뎠는데 (나와 일본 사회 간) 인식의 온도 차이가 너무 컸다. 비슷한 나이대의 일본 젊은이들은 재일동포의 존재도 모르고 관심도 없더라. 그때 느낀 위화감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앞으로 일본사회에서 재일동포로서 그려야 하는 주제가 생긴다면 또 만들지 않을까."

―차기작을 결정하면서 염두에 두는 부분은.

"영화 하나를 찍고 나면 관심사도 변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도 달라진다. 가장 무서운 게 자기 모방이다."

―좋아하는 한국감독이 있나.

"봉준호 감독의 작품, 그중에서도 '살인의 추억'과 '마더'를 좋아한다. '악인' 개봉 전에 마케팅·홍보 담당 직원들끼리 다 모여서 '마더'를 봤다. '악인'이 어둡고 현실적이라 관객 반응이 불안했을 때였다. 한국에서도 '마더'와 같이 어두운 영화가 성공했으니 우리도 흥행시키자는 의미에서였다."

―한국 배우와 일하는 건 어떤가.

"죽기 전에 송강호씨가 출연하는 영화 한 편 꼭 찍고 싶다. 이건 반드시 제목으로 크게 써달라."

☞ 재일동포 3세 이상일 감독은

재일동포 3세로 1974년 일본에서 출생했다. 대학 졸업 후 일본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으며, 졸업작품인 ‘푸를 청’이 2000년 피아 필름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영화계에 데뷔했다. 2004년 무라카미 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식스티나인’을 통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2006년 ‘훌라걸스’로 일본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고 제79회 미국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일본 출품작으로도 선정됐다.

지난해 일본 평단은 "영화 '악인'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방송사에서 만드는 가벼운 대중영화가 주류를 이뤘던 일본 영화계에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영화다운 영화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악인'은 지난해 19억엔(약 267억원)을 벌어들여 흥행에 성공했다. 일본 아카데미에서 남·녀주연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했고, 여주인공 후카츠 에리는 몬트리올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전문지 '키네마 준보'가 선정한 '2010 일본 최고의 영화'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식스티나인' '훌라걸스'의 이상일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는 사람을 죽인 악인과 그 주변 사람들을 화자(話者)로 해 인간의 본성과 인간관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조부모 아래서 외롭게 자란 유이치(츠마부키 사토시)는 온라인 채팅사이트에서 알게 된 여자 요시노(미카시마 히카리)를 살해한다. 그는 같은 사이트에서 만난 또 다른 여자 미츠요(후카츠 에리)와 사랑에 빠져 도피생활을 시작하고 유이치의 할머니는 손자를 기다린다.

'악인'의 개봉(9일)을 앞두고 2일 한국을 찾은 이상일 감독을 서울 왕십리 한 극장에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