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넘나들던 그들 '봉사의 전사' 되다

서울 을지로 중부시장 한쪽에 있는 2층 컨테이너박스. '자전거 무료이용 수리센터'라는 간판과 함께 낡은 자전거들이 가득하다. 소장은 설동춘(60)씨. 우락부락한 인상의 그는 북파공작원 출신이다. 1971년부터 5년간 강원도 오지에서 두더쥐숨기, 맨손격투, 나무·돌로 무기 만들기 같은 특수훈련을 받고 북한을 넘나들던 인물이다. 당시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윤경철(58)씨가 이곳 부소장이다. 설씨는 특수임무수행자회 중구 지회장, 윤씨는 사무국장이다. 둘 다 서울 출신으로 금호동과 만리동에서 태어났다.

주변 사람들은 이들을 한때 '가스통 아저씨'라고 불렀다. 북파공작원에 대한 실체 인정과 보상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LPG통을 들고 시위를 벌이곤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수공작원으로 뽑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대북작전에 청춘을 바쳤다"고 했다.

1970년대 중후반 제대하고 사회에 나왔으나 예우는커녕 당국의 감시와 간섭에 오히려 어렵게 지냈다고 한다. 리어카 채소장사, 광부, 표구점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조국이 우릴 버렸다'는 울분에 자주 주먹다짐을 벌이면서 '불량배'로 취급받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어느 정도 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뤄지면서 마음도 안정을 찾게 된 거죠. 그와 동시에 그간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한 활동에 나서보기로 했어요."

이 지역 북파공작원 출신들은 먼저 한강 청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에 나섰다. 이어 주택가·도로에 버려진 자전거를 거두었다. 이것을 닦고 망가진 부품은 교체해 근사한 새것으로 탈바꿈시켜 저소득층 주민에게 나눠 주었다.

재작년 여름, 이렇게 만든 '친환경 자전거' 150대가 전달됐다. 설씨는 "아이들과 부모가 자전거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만에 사는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작년 여름 180대, 겨울 43대 등 총 800대 넘는 자전거가 새로 태어나 중·고교, 주민센터, 어린이집, 노인회, 상인회 등에 전달됐다. 이들은 작년 가을부터는 구청의 지원을 받아 자전거 수리 기술자와 함께 무료 수리에도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