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박테리아 '수퍼 미스터리'

독일 북부를 시작으로 장출혈성 대장균(EHEC) 감염이 시작돼 피해가 확산된 지 3주를 맞고 있지만, 치료법은커녕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EHEC가 미국·중동까지 번지고 사망자·감염자가 늘자 독일 정부의 미숙한 초기 대응에 대한 국제사회 분노가 커지고 있다. 스페인과 독일, 러시아와 유럽연합(EU) 간에는 외교분쟁의 전운마저 감돈다.

◆수퍼 박테리아 네 가지 미스터리

EHEC에 관한 원인·증상·감염경로·감염규모 등 모든 것이 현재로선 미스터리다. 독일 로버트 코흐 연구소(RKI·질병관리본부에 해당)는 "익히지 않은 토마토·상추·오이를 먹지 마라"고 당부할 뿐이다.

①원인= 독일 당국은 애초 '스페인산 오이'를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스페인 농가를 조사한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당국은 독일 함부르크 지역 환자 96명을 대상으로 식습관 등에 대한 설문 조사를 분석해 오이·상추·토마토를 재료로 한 익히지 않은 샐러드를 원인으로 파악했다. 당국은 몇주 전부터 이들 채소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도 EHEC는 계속 퍼지고 있다. 토마토·오이는 독일 전역의 보편적 식단이어서 이들을 주범으로 몰기엔 무리가 있다.

②증상= '식중독'으로도 불리는 EHEC의 기본 증상은 설사다. 하지만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州) 킬 지역에선 설사 증상이 전혀 없는 환자들이 나타났다. 대신 심각한 신경계 또는 신장 손상 증세를 보인 사례가 있었다. 지난달 29일 사망한 함부르크의 여성(84) 감염자는 신장뿐 아니라 신경계가 치명적으로 손상돼 있었다.

③감염경로= 연구진 사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 감염경로다. 일반적 상황에서 EHEC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병균을 옮길 수 없다. 하지만 현재 박테리아 확산 유형과 속도, 감염자 수로 미뤄 일부 의사들은 "사람끼리 감염시키는 형태의 초기 징조 같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④감염자 수= 2일 현재 EHEC로 인한 사망자는 독일인 17명과 스웨덴인 1명을 포함해 18명이다. 독일 당국은 EHEC 감염자가 2000명을 넘고, 그중 500명은 심각한 용혈성·요독성 증후군(HUS)에 해당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감염 의심자가 처음 발생했다. 미 보건당국은 독일 여행을 다녀온 3명이 유사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체 감염자 수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고 있다.

◆독일에 대한 반감 커져

독일 국립과일채소협회는 "오이·상추·토마토 이외의 채소 판매량도 줄어, 전국적인 피해액수는 하루 1억유로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오염원으로 지목됐던 스페인은 물론 네덜란드·프랑스 농가의 손해도 심각하다.

EHEC 사태는 국가 간 갈등도 낳고 있다. 로사 아길라 스페인 농림부 장관은 "독일의 위기관리 능력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스페인 정부는 독일 정부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다. 스페인 발렌시아 지역에서는 농부들이 300㎏의 과일과 채소를 바닥에 펼쳐 놓고 "독일의 거짓말이 우리를 파괴했다"며 시위를 벌였다. 일부 스페인 농민들은 독일 원정 시위도 계획하고 있다.

러시아는 2일 EU 내 27개국 농산물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EU는 이에 대해 "지나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스페인·독일·덴마크·네덜란드로부터의 채소 수입을 중단했다.

한편 EU 관계자는 독일이 초기 대응 과정에서 EU 법을 어긴 부분은 없는지 법률적 검토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