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동네 의사 송태호의 진료일기] 체했다며 찾아온 50代, 결국 급성 심근경색 진단 받아

우리 병원은 고속도로에서 멀지 않아 타 지역 환자들이 가끔 방문한다. 특히 서울에서 열리는 결혼식이나 잔치에 왔다가 돌아가던 중 갑자기 아플 때 오는 경우가 많다.

어느 토요일 오후, 50대 남자가 병원에 왔다. 친지 결혼식에 참석하고 귀향하는 길인데 속이 더부룩하고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그는 "이거 체한 것 맞죠?"라고 물었다. 한 눈에도 안색이 창백하고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그는 "명치 부근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평소에도 자주 체하는 편"이라고 했다. 병력을 물어보니 5년 전쯤부터 당뇨를 앓고 있지만 약을 꾸준히 복용해 별문제가 없다고 했다.

혈당치는 별로 높지 않았고 복부 팽만도 없고 위장 음(音)도 정상이었다. 급성 위염으로 판단하려는데 환자 다리에 있는 흉터들이 보였다. 당뇨 때문에 생긴 말초신경병일 가능성이 있었다. 이 병은 당뇨병성 궤양으로 악화되면 사지를 절단할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다. 진료를 마치고도 영 개운하지 않고 뭔가 놓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바쁘다는 환자를 붙들고 심전도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어이쿠! 역시나 급성 심근경색으로 보이는 심전도 결과가 나왔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진단하려면 흉통(胸痛)과 심전도 결과, 혈액검사 결과 이렇게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동네병원에서는 응급혈액검사가 불가능한데다 이 환자는 흉통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119에 전화를 해서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부탁했다.

환자의 심장초음파 검사를 하고 있는데 5분도 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다. 119 대원에게 심전도 검사결과와 소견서를 전해주려 하니 구급차에 같이 타야 한다고 했다. 의료기관에 왔다가 구급차를 부른 경우엔 반드시 의료진이 동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병원에 의료진은 나밖에 없으니 구급차를 탈 사람도 나뿐이다. 이를 어쩌나. 진료시간도 많이 남았고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도 많았다. 할 수 없이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돌아오는 데 1시간30분이나 걸렸다. 이미 진료시간은 끝났고 환자들은 모두 가버렸다.

급성 심근경색의 제일 중요한 증상은 흉통이다. 그러나 흉통이 없는 급성 심근경색도 제법 많기 때문에 진단이 쉽지 않다. 당뇨가 있거나 나이가 많은 경우, 특히 여성에게서 '흉통 없는 심근경색'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평소보다 소화불량이 심하거나 위가 아플 땐 한 번쯤 심전도를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심근경색 환자를 무사히 인도했다는 안도감과, 지나가다 들른 환자를 보느라 우리 동네 '단골 환자'들을 헛걸음하게 했다는 허탈감이 교차했다. 옷을 갈아입고 퇴근하려는데 간호조무사가 한마디 했다. "원장님, 그 남자분 진료비 수납 안 됐어요."

몇 주 뒤, 대학병원에서 편지가 왔다. 그 환자는 관상동맥이 막혔다는 진단을 받고 그날 바로 수술을 받아 완쾌됐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