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거 사파리 투어의 기점이 되는 도시는 남아공 음푸말랑가의 주도인 넬스프릿이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동쪽으로 358㎞ 떨어진 곳으로, 자동차로 5∼6시간, 비행기로 1시간 남짓이 걸린다.
크루거는 열대우림과 사막의 사이에 분포하는 사바나(아열대 초원) 지대다. 풍부한 먹이와 적절한 기후로 수만 종의 동물이 모여 사는 동물의 왕국인 셈이다. 이른바 아프리카의 '빅5'로 불리는 사자-표범-코끼리-코뿔소-물소(버팔로)를 비롯해 기린, 하마, 얼룩말, 하이에나, 혹멧돼지, 쿠두, 일런드 등 맹수와 대형 동물만도 20여종이 모여 산다,
크루거의 매력은 야생동물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 세렝게티 등이 드넓은 초원을 뛰노는 목가적 풍광을 접하는 게 일반적 사파리 패턴인데 비해, 크루거에서는 동물의 사냥 등 일상의 숨소리까지 지척에서 관찰할 수 있다. 공원 깊숙히 사설 로지가 형성돼 게임 사파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기자가 찾은 곳은 크루거에서도 생태학자들 사이 가장 인기가 있다는 말라말라(대형 영양-원주민어로 Mala Mala) 동물보호지역. 빅5는 물론 다양한 동물이 모여 서식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접근도 만만치 않다. 넬스프릿공항에서 자동차를 타고 2시간 30분을 더 사바나 숲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오지 중 오지다. 공항을 벗어나 30여 분을 달려 비포장 사바나 숲길로 접어 든 뒤, 다시 오프로드를 20㎞ 이상 달려야 한다.
◆야간 사파리에서 목격한 사바나의 맹수들
크루거에 도착한 첫날 오후 사파리에 나섰다. 해가 지고 동물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대인 오후 4∼8시 동물을 만나러 나선다. 하지만 어떤 동물을 만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운에 맡겨야 한다. 오후 투어로 빅5를 다 만날 수도 있고, 임팔라 등 초식 동물만 보는 수도 있다.
게임 레인저 유리는 말라말라 동물보호구역내 동물의 서식처를 훤히 꾀고 있다. 맹수들의 야간 사냥은 동물이 꼬이는 물가, 초식동물들의 거주지, 출몰지에서 주로 이뤄진다. 게임 드라이빙은 동물들의 서식처를 찾거나, 동물의 배설물, 발자국을 찾아 이동경로를 추적한다.
유리는 만약을 대비해 실탄을 장착한 엽총을 운전석 앞에 두고 사바나 숲속으로 향했다.
로지 주변에서부터 운좋게 코끼리떼를 만나는하면 스프링벅, 임팔라 등과도 마주쳤다. 숲속을 20여 분 돌아 봤을 즈음 유리가 갑자기 속삭이듯 말했다. "사자 가족이다!"
해질녘 한 무리의 사자 가족이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숫사자 한 마리와 새끼 사자 4마리. 그리고 어미 암컷 2마리 등 그야말로 초원에 소풍 나온 행복한 가족 모습에 다름없다. 사자 가족은 사파리 차량에서 비춰대는 불빛에 전혀 개의치 않고 태연한 장난과 영역 표시 등으로 저녁 나절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이 곳에서 사냥이 금지 된지가 100년이 넘고 보니 여기서 대를 이어온 동물에게 사파리 차량은 환경의 일부가 된 셈이다.
한 참을 어린 사자의 장난을 받아주던 어미 사자의 포효를 신호로 사자 가족은 무리를 지어 느릿하게 숲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전광석화와 같은 표범의 임팔라 사냥
사자 가족을 뒤로하고 초원을 헤맸다. 우연히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비친 것은 표범. 가이드 유리는 "운좋게 표범의 저녁 사냥을 볼 수 있게 됐다"며 흥분했다. 그는 "야간에 표범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거니와 사냥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면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꺼리는 표범은 사파리에서는 보기 어렵기로 소문난 맹수다.
인내가 필요했다. 밤을 새울 태세다. 표범은 웅크리고, 목을 곧추세워 숲속을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저러다 밤새겠다' 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레인저 유리는 "그냥 돌아갈까?" 자꾸 물었다.
하지만 더 있어보자고 계속 기다릴 것을 요청했다. 렌즈에 생생히 담고 싶은 욕심에서 였다. 하지만 다른 일행에게도 미안해진 상황 . 그냥 포기를 했다.
차를 후진 시켜 막 빠져 나가려는 사이 믿기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임팔라의 외마디 비명이 들린 것이다. 어수선한 틈을 타 표범의 날카로운 이빨이 임팔라의 목을 나꿔챘다. 순식간에 그것도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각도에서 벌어진 사냥이었다.
표범은 임팔라의 숨통이 끊어질때까지 목덜미를 물고 있었고, 몸이 축 늘어지자 그제사 사방을 경계하며 포식에 나섰다.
전율과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유독 바삐 움직이는 게 있었다. 하이에나다. 마치 무슨 바쁜 이이라도 생겨 야근 일터를 향하는 것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곳곳에서 하이에나를 만날 수 있었다. 오늘밤 말라말라 초원에서 살육의 전쟁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하이에나는 잘 알고 있던 때문이다. 유리는 하이에나가 그 전과를 훔치거나 빼앗기위해 이곳저곳 맹수들의 사냥터 주변을 물색하고 다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롯지로 돌아가는 길, 강가에서 하마를 만났다. 하마는 보기와는 달리 포악하다. 예전 보츠와나 잠베지강에서 하마 무리가 관광객의 소형 보트에 사납게 달려드는 광경을 목격했던 터라 하마 역시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유리가 욕심을 냈다. 이미 지프는 강가 길이 아닌 초지로 들어서 속도를 낼 수도 없는 처지다. 하지만 유리는 괜찮다며 다만 놀라거나 일어서지만 말라고 주의를 당부한다. 하지만 야밤에 자신의 영역을 침법한 이방인은 하마에겐 그저 물리칠 적이고 공격의 대상일 뿐이다.
하마가 물을 박차고 나오는 모습이 눈앞에 보였다. 하마의 거친 숨소리가 차량 뒷편에서도 들리는 듯했다. 순간 묘골이 송연했다. 다행히 하마는 차량을 멀끔히 바라보고는 풀을 뜯기만 했다. 흥분 속에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이튿날 저녁 사파리 시간. 전날 훤한 달빛 과는 달리 초원에는 음산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달무리가 지고 초원은 칠흙으로 변해갔다. 묘하게 동물들도 소리를 죽였다. 간간히 수풀속에 임팔라가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만 발견 될 뿐. 초원의 동물들이 자취를 감췄다.
숲속에서 아침 식사를 즐기는 버팔로 떼도 만났다. 무리의 우두머리는 사파리 차를 만나도 물러섬 없이 길을 비켜 주지 않는다. 무리에 위엄을 보이는것이다.
코끼리떼는 어쩌면 사파리에서 가장 흔한 모습이다. 코끼리는 평온해 보이지만 무서운 놈이다. 성미도 대단하다. 그래서 조심해야 할 경계의 대상이다. 먹어치우는 양도 엄청나다. 6톤짜리 어른 코끼리는 하루 300kg을 먹고, 150kg의 배설물을 남긴다. 사파리 루트 곳곳이 코끼리 배설물로 가득하다. 이들이 휩쓸고 간 숲은 초토화가 된다. 그래서 코끼리는 초원의 환경파괴자에 다름없다.
▶말라말라 로지
'게임 리저브'(동물관찰을 위한 보호지역)라 불리는 사파리공원은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 있다. 세렝게티, 마사이마라, 오카방고 델타, 응고롱고로, 초베 국립공원 등등. 크루거는 이에 비해 규모는 작아도 아프리카의 관문인 요하네스버그에서 가깝고 세계 최고급의 사파리 로지들로 명성이 높은 편이다.
◆여행메모
▶가는 길=남부아프리카 여행의 중심은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다. 이곳을 통해 아프리카 전역으로 항공편이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아시아나항공 등을 타고 홍콩을 경유해 남아프리카항공편으로 요하네스버그로 향하는 게 일반적이다. (인천~홍콩 3시간30분, 홍콩~요하네스버그 13시간 10분 소요) 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로 적립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항공 서울사무소 (02)775-4697
▶여행 상품=◇아프리카 전문 여행사인 인터아프리카(www.interafrica.co.kr 02-775-7756 )에서는 두 가지 타입의 남아공 여행 상품을 내놓았다. ◇크루거 2박(말라말라 로지 2인 1실)+케이프타운 3박(테이블베이호텔 기준) 등 총 8일 599만원 ◇크루거 2박(카파마리버로지)+케이프타운(3박)+ 빅토리아폭포(1박) 등 총 9일 499만원.
남반구에 위치한 탓에 기후가 서울과는 정반대다. 6월부터 11월까지 가을철이고, 사바나 사파리 여행의 최대 성수기다. 황금빛으로 물든 사바나 평원을 거니는 사자 등 야생동물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여행팁=크루거국립공원(ww.sanpark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