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비주얼 특별기획] 핸드백이 여인을 자유롭게 하리니…
입력 : 2011.06.08 03:10 | 수정 : 2011.06.08 14:49
가방의 진화는 여성 해방의 역사
손가방은 원래 남성의 전유물… 중세부터 여성도 지니고 다니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
에르메스, 처음으로 지퍼 달고… 샤넬, 처음으로 어깨끈 달고…'여자 몸을 더 자유롭게' 혁신은 계속
"여자의 인생은 핸드백과 함께 진화(進化)했다." 프랑스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Chanel·1883~1971년)은 이런 말을 남겼다.
여자에게 가방은 때론 인생을 운반하는 도구다. 립스틱과 향수, 통장과 휴대전화, 때론 수첩과 편지를 숨겨놓는 작은 방(房). 그래서일까. 디자이너들은 오랫동안 여성의 한숨을 줄여주는, 여자를 속박하지 않고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가방을 고안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퍼·체인…남자의 전유물로 여자를 해방
대다수 복식학자가 추정하는 손가방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무렵이다. 남자들은 당시 옷에 주머니를 다는 대신 허리띠에 작은 손가방을 매달아 그 속에 열쇠·지갑·빗·칼을 넣고 다녔다. 복식학자 클레어 윌콕스에 따르면, 여자들이 이 '남자의 전유물'을 몸에 지니고 다니기 시작한 건 15세기 중세시대 무렵부터다. 십자군 전쟁 때 병사들이 십자가를 넣고 다녔던 작은 주머니 '알머너(almoner)'를 여자도 쓰기 시작한 것. 향수를 넣고 다니는 경우가 보통이었는데, 길게 끈을 달아 허리 아래로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다니는 게 당시 유행이었다.
비단 끈으로 입구를 여미던 작은 주머니가 금속 똑딱이 단추를 단 핸드백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건 18세기부터다. 그러나 여전히 가방 입구는 견고하지 못해서 조금만 소지품을 쑤셔 넣어도 금세 열렸고 걸핏하면 내용물을 쏟아냈다. 이런 여자의 고민을 획기적으로 해결해 준 디자이너가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Hermes·1871~1951)다. 그는 1922년 다시 한번 '남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물건을 가방에 붙이는 실험을 했다. 사업차 갔던 캐나다에서 캐딜락 자동차 내부에 붙어 있던 지퍼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에르메스는 즉시 지퍼를 프랑스에 독점적으로 수입, 가방 입구에 달았다. 지퍼를 달아 입구를 튼튼하게 봉쇄한 최초의 가방 '볼리드(Bolide)'는 그렇게 탄생했다.
필요는 필연을 낳는다. 지퍼 달린 가방을 들고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여자들. 그러나 여전히 짐 싸는 건 쉽지 않았다. 여러 개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는 여행은 당시 여성들에겐 곧 또 다른 노동(勞動)이었다. 프랑스 브랜드 루이비통이 1930년에 고안한 '스피디(Speedy)' 백은 방수 캔버스를 이용해 부드럽게 만든 가방. 가방을 납작하게 접어도 구겨지거나 상하지 않도록 특수처리해 곧 도시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디자이너 샤넬은 1955년 2월 어린 시절 지냈던 보육원 감독관이 항상 허리에 차고 다녔다는 열쇠 체인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가방을 발표한다. 체인이 달린 가방 '2.55'다. 당시만 해도 여성용 핸드백엔 짧은 손잡이만 있을 뿐 긴 어깨끈이 없었다. 항상 가방을 쥐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몹시 불편했고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어깨끈을 단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건 군인뿐이었다. 어깨끈을 단 가방의 등장으로 여자들은 한결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다.
여자에게 가방은 때론 인생을 운반하는 도구다. 립스틱과 향수, 통장과 휴대전화, 때론 수첩과 편지를 숨겨놓는 작은 방(房). 그래서일까. 디자이너들은 오랫동안 여성의 한숨을 줄여주는, 여자를 속박하지 않고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가방을 고안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퍼·체인…남자의 전유물로 여자를 해방
대다수 복식학자가 추정하는 손가방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무렵이다. 남자들은 당시 옷에 주머니를 다는 대신 허리띠에 작은 손가방을 매달아 그 속에 열쇠·지갑·빗·칼을 넣고 다녔다. 복식학자 클레어 윌콕스에 따르면, 여자들이 이 '남자의 전유물'을 몸에 지니고 다니기 시작한 건 15세기 중세시대 무렵부터다. 십자군 전쟁 때 병사들이 십자가를 넣고 다녔던 작은 주머니 '알머너(almoner)'를 여자도 쓰기 시작한 것. 향수를 넣고 다니는 경우가 보통이었는데, 길게 끈을 달아 허리 아래로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다니는 게 당시 유행이었다.
비단 끈으로 입구를 여미던 작은 주머니가 금속 똑딱이 단추를 단 핸드백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건 18세기부터다. 그러나 여전히 가방 입구는 견고하지 못해서 조금만 소지품을 쑤셔 넣어도 금세 열렸고 걸핏하면 내용물을 쏟아냈다. 이런 여자의 고민을 획기적으로 해결해 준 디자이너가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Hermes·1871~1951)다. 그는 1922년 다시 한번 '남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물건을 가방에 붙이는 실험을 했다. 사업차 갔던 캐나다에서 캐딜락 자동차 내부에 붙어 있던 지퍼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에르메스는 즉시 지퍼를 프랑스에 독점적으로 수입, 가방 입구에 달았다. 지퍼를 달아 입구를 튼튼하게 봉쇄한 최초의 가방 '볼리드(Bolide)'는 그렇게 탄생했다.
필요는 필연을 낳는다. 지퍼 달린 가방을 들고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여자들. 그러나 여전히 짐 싸는 건 쉽지 않았다. 여러 개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는 여행은 당시 여성들에겐 곧 또 다른 노동(勞動)이었다. 프랑스 브랜드 루이비통이 1930년에 고안한 '스피디(Speedy)' 백은 방수 캔버스를 이용해 부드럽게 만든 가방. 가방을 납작하게 접어도 구겨지거나 상하지 않도록 특수처리해 곧 도시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디자이너 샤넬은 1955년 2월 어린 시절 지냈던 보육원 감독관이 항상 허리에 차고 다녔다는 열쇠 체인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가방을 발표한다. 체인이 달린 가방 '2.55'다. 당시만 해도 여성용 핸드백엔 짧은 손잡이만 있을 뿐 긴 어깨끈이 없었다. 항상 가방을 쥐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몹시 불편했고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어깨끈을 단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건 군인뿐이었다. 어깨끈을 단 가방의 등장으로 여자들은 한결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다.
◆손을 해방하다, 규칙에서 벗어나다
이름만 '핸드백'일 뿐 끊임없이 손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려는 가방의 탈바꿈은 계속된다. 1977년 탄생한 이탈리아 펜디의 '바게트(Baguette)'는 짧은 어깨끈과 네모 납작한 간결한 모양으로 여자의 팔을 한층 경쾌하게 만들었다. 바게트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것처럼 가방을 겨드랑이에 끼울 수 있어 일터에서도 여행지에서도 두루 쓰였다. 국내에서 인수한 독일 회사 MCM이 만든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도 손잡이만 있던 얌전한 가방에 어깨를 가로지르는 끈을 달아 새로움을 꾀한다.
색다른 소재로 혁신을 추구한 가방도 있다. 1979년 이탈리아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Prada)는 할아버지가 가죽 제품을 포장하기 위해 썼던 '포코노'란 이름의 방수천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값싼 천으로 만든 이 거무죽죽한 가방은 처음엔 외면받았지만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턴 직장 여성들에게 열광적인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발렌티노 '레이스(Lace)'는 귀족에게나 어울릴 법한 고급 소재에 기술을 입힌 경우다. 비싸고 잘 찢어지는 레이스에 특수 나일론과 PVC를 입힌 것. '화려한 가방은 마구 들기 부담스럽다'는 편견을 깼다.
2000년대에도 진화는 계속된다. 뒤집어서도 쓸 수 있는 이브생로랑의 '네오 더블 백(Neo double bag)', 끈을 조절해주면 주중엔 네모난 형태의 정장 가방으로, 주말엔 넉넉하고 넓은 아이들 기저귀 가방으로 써도 좋은 셀린느의 '러기지(Luggage)'까지.
더 가볍게, 더 쉽게, 더 자유롭게. 핸드백은 그렇게 오늘도 여성의 노동을 줄이고 한숨을 덜기 위해 탈바꿈한다. 여성이 새로운 가방을 끊임없이 욕망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름만 '핸드백'일 뿐 끊임없이 손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려는 가방의 탈바꿈은 계속된다. 1977년 탄생한 이탈리아 펜디의 '바게트(Baguette)'는 짧은 어깨끈과 네모 납작한 간결한 모양으로 여자의 팔을 한층 경쾌하게 만들었다. 바게트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것처럼 가방을 겨드랑이에 끼울 수 있어 일터에서도 여행지에서도 두루 쓰였다. 국내에서 인수한 독일 회사 MCM이 만든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도 손잡이만 있던 얌전한 가방에 어깨를 가로지르는 끈을 달아 새로움을 꾀한다.
색다른 소재로 혁신을 추구한 가방도 있다. 1979년 이탈리아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Prada)는 할아버지가 가죽 제품을 포장하기 위해 썼던 '포코노'란 이름의 방수천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값싼 천으로 만든 이 거무죽죽한 가방은 처음엔 외면받았지만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턴 직장 여성들에게 열광적인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발렌티노 '레이스(Lace)'는 귀족에게나 어울릴 법한 고급 소재에 기술을 입힌 경우다. 비싸고 잘 찢어지는 레이스에 특수 나일론과 PVC를 입힌 것. '화려한 가방은 마구 들기 부담스럽다'는 편견을 깼다.
2000년대에도 진화는 계속된다. 뒤집어서도 쓸 수 있는 이브생로랑의 '네오 더블 백(Neo double bag)', 끈을 조절해주면 주중엔 네모난 형태의 정장 가방으로, 주말엔 넉넉하고 넓은 아이들 기저귀 가방으로 써도 좋은 셀린느의 '러기지(Luggage)'까지.
더 가볍게, 더 쉽게, 더 자유롭게. 핸드백은 그렇게 오늘도 여성의 노동을 줄이고 한숨을 덜기 위해 탈바꿈한다. 여성이 새로운 가방을 끊임없이 욕망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