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서 출발한 우리 밥상… 맛 속에 지혜 느껴져"

―지역별 차이는.

"충청도는 양식보다는 자연산 재료를 많이 쓰는 게 눈에 띄었다. 작은 굴로 만드는 어리굴젓이 양식 굴이 아닌 게 대표적인 예다. 통영 쪽하곤 다르다. 경상도 쪽을 가니까 유교 전통이 강해서인지 종부의 제사상으로 음식을 평가하는 문화가 강하더라."

―전라도와 강원도는 어떤가.

"전라도는 상상력이 강한 듯하다. 예를 들어 국물 음식을 먹다가 '이거 국물 없이 먹으면 더 맛있지 않겠느냐'며 창의적인 새 레시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썩은 내가 심하게 나는 홍어로 여러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을 봐라. 강원도 음식은 '소통의 음식'이었다. 오지가 많아 사람이 그리우니 같이 만들고 같이 치우는, 사람을 부르는 음식을 개발해 왔다. 한 예로 정선에서 메밀가루를 갈아 갓김치로 속을 채워 만든 채만두, 삶은 콩을 갈아 감자를 넣고 끓인 콩갱이를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들고 나눠 먹는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각지의 고유 음식들이 많이 소개됐다. 거제의 약대구는 처음 들어봤다.

"약대구는 생대구의 내장을 걷어내고 소금으로 속을 채워 3일 동안 얼리고 4일 동안 녹는 과정을 3개월 동안 반복해 만든다고 한다. 그 약대구로 만든 죽이 감기몸살 치료와 피로회복에 특효가 있단다. 거제분들은 겨울에는 김장김치 양념에 포 뜨듯 얇게 저민 생대구를 섞어 소를 만들어 대구김장김치도 만든다."

―동해안의 훗게회는 뭔가.

"막 허물을 벗어 말랑말랑한 새 대게가 훗게다. 껍질이 없어 게 자체가 얇고 부드럽고, 게살은 결을 따라 찢어지는 게 꼭 닭고기 같다. 현지 분들, 특히 어부들은 대게를 말려 포로도 먹는데 해각포라고 한다. 너무 맛있어 부인과 자식도 안 주고 혼자서 몰래 먹는다는데 난 먹진 못했다."

―전남 '장흥삼합'은 처음 들어봤다.

"우리가 흔히 하는 홍어·돼지고기·김치의 삼합이 아니라 키조개·쇠고기·표고버섯의 삼합이다. 이 삼합을 불판에 구워 싸먹었는데 맛이 굉장했다. 꼭 전국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강화도의 숭어 요리가 흥미로웠다.

"숭어는 갯벌 속 플랑크톤만 먹고 사는 깨끗한 생선이라고 들었다. 서해와 한강이 만나는 강화도에선 예부터 숭어가 많이 나서 회는 물론이고 찜을 해 먹기도 하고 만두까지 만들어 먹는다. 모두 임금님께 진상됐던 음식들이다."

―사찰음식, 나물음식도 다뤘다.

"처음 듣는 나물 이름이 엄청났다. 지리산 할머니들은 지금도 높은 산을 직접 올라 나물을 뜯는다. 단풍취 무침, 솔수육, 산나물밥 등 영양 넘치고 맛좋은 나물 음식들이 수두룩하다. 요즘 나물이 좋다니까 전국 산지에서 너도나도 나물을 마구 뜯는다고 하는데 규제가 필요하다."

―전북 진안 '꿩밥상'도 생소하다.

"야생 꿩을 잡아 한 상을 차린다. 탕, 구이, 육회, 샤부샤부 등 조리법이 여러 가지다. 꿩 날고기를 육회로 먹었는데 맛이 아주 묘하고 좋았다. 꿩을 한 마리만 탕으로 끓여도 국물이 잘 우러나고 맛이 좋아 열명, 스무명이 함께 먹는다고 한다. 감기치료에 좋단다."

―사라지는 우리 음식재료들이 적지 않다는데.

"온난화, 남획 등의 이유로 전통적인 식재료가 고갈되고 있어 안타깝더라. 대표적인 게 벌교 꼬막이다. 참꼬막이 최고이고 보통 꼬막은 1~2년 정도 크면 먹을 수 있는데 수확이 영 풍성하지 않다. 꼬막은 몇 년 전만 해도 그냥 반찬으로 나왔을 정도로 흔했는데…."

―술을 즐겨 한다고 들었다. 술친구와 꼭 한 번 먹고 싶은 음식은.

"다 먹고 싶지. 멸치 하나만 있어도 술 생각이 난다(웃음). 멸치 얘기를 하니 부산 기장의 멸치가 생각난다. 이탈리아 앤초비 못지않게 맛있고 굵고 컸다. 기장 멸치도 앤초비처럼 세계적으로 널리 퍼질 수 있게 다양한 조리법을 연구했으면 한다."

―'한국인의 밥상'을 좀 더 풍부하고 충실하게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고려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음식 문화에 대한 기록이나 연구에 단절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외란(外亂)이 많았던 탓인지 모르겠다. 우리 음식 레시피의 정통을 살리기 위해 대중음식 문화에 대한 자료들을 더 많이 찾아내고 기록해 축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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