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 빠진 중소형 오피스 "살 길은 리모델링"

지난달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오피스 빌딩은 세입자를 모두 내보냈다.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낡고 허름한 건물을 현대식 새 건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건물은 4개월 동안의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복도와 사무실은 물론 오래된 난방 배관을 모두 교체할 계획이다. 이 건물의 관리업체 직원은 "세입자들이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대형 오피스를 선호하면서 최근 빈 사무실이 늘었다"며 "건물 신축은 아니지만, 대형 오피스빌딩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 강남권 오피스(사무용 빌딩) 시장에 10층 미만의 중소 빌딩들이 리모델링 작업에 한창이다. 대형 빌딩들을 선호하는 입주 기업이 늘어나면서 중소형 빌딩을 중심으로 입주자 이탈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편의시설 갖춘 대형 오피스 찾는 세입자

최근 강남 교보타워를 중심으로 한 강남대로와 테헤란로 주변에서는 건물 외곽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리모델링 공사를 벌이는 중소 빌딩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올 들어 오피스 빌딩의 리모델링 허가 건수는 총 36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28건)보다 30% 가까이 늘었다. 강남구청 건축관리팀 직원은 "최근 리모델링 공사를 허가받으려는 문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건물 외관을 바꾸는 것은 물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거나 내부 구조를 변경하는 공사도 많다"고 말했다.

중소형 오피스 빌딩이 리모델링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증권·보험사 등 금융회사나 외국계 기업, IT(정보기술)·벤처 기업들이 낡고 오래된 중소형 빌딩보다 대로변에 있어 교통여건이 좋고 편의시설을 잘 갖춘 대형 오피스를 선호하는 추세에 맞추기 위해서다. 건물 외관만 깔끔하게 개조할 경우 기존 임차인을 내보내지 않고도 4~5개월 만에 공사를 마칠 수도 있다.

지난 2000년에 지어진 대치동의 7층짜리 빌딩은 낡은 화강석으로 된 지상 1층 벽면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자기 재질의 타일로 바꾸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건물 자체는 그리 낡지 않았지만 화강석 재질이 건물에 노후한 이미지를 준다는 판단에서다. 논현동에 있는 지상 6층짜리 오피스 빌딩은 건물 외벽 전체에 LED 조명을 설치하기로 했다. 에너지 절감과 함께 최신식 건축물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다.

역삼동의 BOSC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강남지역 중소형 빌딩들은 대부분 10~20년 된 건물들이 많아 임대료에 비해 편의성이나 쾌적성이 떨어진다"며 "리모델링으로 편의시설 등을 갖추게 되면 임대료나 관리비를 주변의 대형 빌딩과 비슷하게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갈수록 양극화되는 강남의 대형·중소형 빌딩

중소형 빌딩이 리모델링을 선호하는 또 다른 배경에는 강남권 오피스 시장에서 갈수록 뚜렷해지는 대형과 중소형 빌딩 간의 양극화 현상도 자리한다. 대형 오피스 빌딩은 최근 2년 동안 빈 사무실이 크게 늘지 않고 임대료는 조금씩 올랐지만, 중소형 빌딩은 공실률(전체 빌딩에서 빈 사무실이 차지하는 비율) 증가와 함께 임대료가 떨어지는 양상이다. 부동산투자 정보업체 '알투코리아'에 따르면 2009년 1월 3.8%였던 대형 오피스 공실률이 올해 1분기 4.5%로 0.7%포인트 증가하는 동안 중소형 빌딩은 5.7%에서 7.8%로 2.1%포인트 증가했다. 평균 임대료 역시 대형은 ㎡당 6만6021원에서 6만8310원으로 소폭 상승한 반면 중소형은 4만8735원에서 4만5054원으로 낮아졌다.

세빌스코리아 홍지은 상무는 "강남은 최근 신규 빌딩 공급이 적어 여의도나 광화문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대형 빌딩에 대한 선호도가 더 큰 편"이라며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임대료·관리비 부담에 어려움을 겪는 영세 기업이 비(非)강남지역으로 이주하는 것도 중소형 빌딩의 공실률을 더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의 중소형 오피스 시장은 공실률 증가·임대료 하락 등 '침체기'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속되는 경기 침체의 여파를 대형 오피스에 주로 입주해 있는 금융회사나 외국계·IT 기업에 비해 중소 빌딩에 세 들어 있는 영세업체들이 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다.

알투코리아 김태호 이사는 "중소형 빌딩이 대형 빌딩과의 경쟁에서 밀려 공실률이 높아지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강남 업무지구 내 중소형 빌딩을 중심으로 한 리모델링 모습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