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처럼 아이들도 밝은 세상 그렸으면"

오는 28일 캄보디아 시엠립에 재작년 3월 세상을 떠난 화가 김점선을 기리는 '김점선 미술교실'이 문을 연다. 42㎡(13평) 교실 두 칸인 이 자그마한 미술학교는 여덟 살 위인 김점선을 '누나'라고 부르며 돈독하게 지냈던 사진가 김중만(57)이 개발도상국 아동 후원단체인 플랜(Plan) 및 김점선 기념사업회 등과 함께 마련했다.

"누나가 세상을 떴을 때 가장 먼저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했어요. 나는 누나가 사람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길 바랐거든요. 늘 자신을 '나이 먹은 아이'라고 불렀던 사람이니 아이들을 위한 미술교실을 지으면 좋겠다 싶었죠."

김중만과 김점선이 처음 만난 것은 1977년. 김점선이 김중만의 전시회에 오면서였다. 그 인연이 30년 넘게 이어졌다. 2006년엔 합동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예술가들은 대개 다른 예술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체크해요. 김점선의 시각은 항상 나를 부끄럽게 했고, 부럽게 했죠. 나는 세상을 어둡게 보는데 누나는 밝고 아름다운 면만 봤으니까요. 그는 내게 누나였고, 동료였고, 친구였지요."

김중만은 재작년 12월 '김점선 미술교실' 기금 마련을 위한 전시회 '극락계서(極樂階序)'를 열었다. 전시회 사진 64점은 그해 4월 캄보디아에서 앙코르와트 유적과 그곳 아이들을 찍은 것이다. 그 수익금 8000만원이 이번에 교실을 짓고 교사(敎師)를 구하는 데 들어갔다. "누나가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 없으니 미술교실을 국내에 세울까도 했지만, 더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위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찬란한 앙코르와트 유적을 보면 캄보디아 사람의 피에 미술적 재능을 담은 DNA가 흐르고 있음이 느껴져요. 한 번도 물감 냄새를 맡아본 적 없고, 한 번도 붓을 잡아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기회를 준다면 좋은 미술가가 나올 거예요. 그러면 누나도 즐거워하겠지요."

'김점선미술교실'에서 미술을 배울 시엠립의 10~15세 청소년은 600여명. 이들이 1주일에 한 번씩 현지인 교사 4명으로부터 수업받게 된다. 600명이 사용할 물감과 붓 1차분은 신한물감이 후원한다. 완공식에 앞서 24일 김점선의 그림과 김중만의 사진, 그리고 이해인 수녀, 정호승 시인, 정민 한양대 교수 등 생전에 김점선과 친분이 두터웠던 17명의 글을 엮은 책 '김점선 그리다'(문학의 문학)도 출간된다. 책 표지로는 김중만이 2006년 김점선의 보그(Vogue)지 촬영 때 찍은 사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