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천+영생+삼위일체… '짬뽕 교리' 주체사상 북한만의 종교로

북한 주체사상을 기독교, 유대교, 러시아정교, 유교, 천도교의 요소를 두루 혼합한 '배타적 유일신교'의 일종이자 북한의 '국교(國敎)'로 규정한 연구 논문이 나왔다. 정대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연구원이 최근 한국종교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북한의 종교정책연구-북한 국가종교의 성립 과정을 중심으로'다.

논문에 따르면 주체사상의 근본 특징이라는 '사람 중심' 개념은 천도교 교리를 베낀 것이다. 김일성은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서 소위 항일무장투쟁 시기 천도교 지도자의 입을 빌려 자신의 좌우명 '이민위천(以民爲天·백성을 하늘처럼 섬김)'이 "천도교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 사상과 상통한다"고 언급한다. 또 주체사상의 '수령 숭배'는 러시아의 '황제교황주의'와, 그 영향을 받은 '스탈린주의'의 부산물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신학수업을 체계적으로 받은 신학생 출신인 스탈린이 이를 자기 우상화에 활용했고, 김일성은 이를 다시 본떴다는 분석이다.

주체사상이 강조하는 '수령·당·인민 삼위일체'는 명백히 기독교적 개념이다. 정씨는 또 "수령의 사상을 믿고 수령이 이끄는 조직의 구성원이 돼 임무에 충실하면 수령으로부터 영원한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받는다는 '영생(永生)' 개념은 수령을 거룩한 존재로 숭배하는 주체사상이 제공하는 가장 극적인 종교경험"이라고 평했다. '영생' 개념은 또 "혁명의 대를 계속 이어가야만 수령으로부터 받은 정치적 생명도 영생할 수 있다"는 식으로 수령 세습 문제에 종교적 해답을 제시하는 데도 이용된다.

유대교적 선민(選民)사상도 발견된다. 북한 정권은 혈연적으로 단일하고, 역사적으로 유구하며, 문화적으로도 우수한 '민족'을 객관적 실체로 증명하기 위해 주체사상을 '단군 담론'과 연결시킨다. 단군릉을 지은 평양은 "혁명수도일 뿐 아니라 단군의 태(胎)가 묻힌 조선민족의 원고향"이다. '태양'과 '밝음'으로 상징되는 단군을 '민족의 태양' 김일성과 동일시하면서 '김일성민족의 시조'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정씨는 "이를 유대 선민사상에 대입하면 단군은 아브라함, 평양은 예루살렘, 김일성은 메시아에 해당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은 자신의 정치를 "인덕(仁德)정치"라며, 북한 사회를 "수령은 인민에게 사랑과 믿음을 베풀고, 인민은 어버이 수령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 대가정(大家庭)으로 묘사한다. 유교적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북한 주체사상은 공산주의라는 병 속에 담긴 성리학, 혹은 모택동의 옷을 입은 주희(朱熹)"(브루스 커밍스)라는 평도 나온다.

주체사상은 종교적 의례 형식도 갖췄다. 수령의 신화와 관련한 모든 장소는 '혁명전적지' 등으로 거룩하게 구별해 순례의 대상이 되며, 모든 직장과 가정에는 예배의 장소인 '김일성혁명사상연구실'이 꾸려져 주기적으로 주체사상 교리와 신화를 학습한다.

정씨는 "북한은 주체사상의 민족주의적 특성을 강조하며 북한뿐 아니라 남한의 구성원까지 잠재적 '신도'로 파악한다"며 "남한의 종교인들 역시 북한의 국가종교인 주체사상의 도전에 진지하게 응전할 수 있는 근거와 전략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