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슬픔을 파는 시인'이라 부르지말라"

지난달 마지막 주말 시인 도종환(57)은 장남 혼사를 치렀다. 그 아들이다. '접시꽃 당신'의 주인공이었던 아내를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 보낼 때 두 돌을 갓 넘겼던 핏덩이. 시인은 그저 "이렇게 잘 자라줘서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엊그제 출판사 실천문학사는 시집 '접시꽃 당신' 출간 25주년 기념 한정판을 펴냈다. 출판사가 공개한 그간의 판매 부수는 약 120만부. 문학을 숫자로 따지는 것은 민망한 노릇이고, 또 숫자로만 따지자면 그 앞에 류시화 등 다른 시인의 이름도 있다. 하지만 100만부가 넘게 팔린 시집 중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시집은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렵다. 실천문학사 대표이자 후배 시인인 손택수는 "1986년에 출간된 시집이 2000년대에 들어서도 매년 5000~1만부씩 사랑받고 있다"면서 "시의 생명력이라는 차원에서 '접시꽃 당신'은 한국 시단에 유례가 없는 경우"라고 했다.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시인은 '참다운 슬픔의 힘'이라는 평가와 '슬픔을 파는 시인'이라는 비판 사이에서 무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접시꽃 당신'이 출간된 1980년대 후반은 소위 '시의 시대'. 지금이야 시집(詩集)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사실 자체에 고개를 갸웃할 사람이 많지만, 그때만 해도 서정윤의 '홀로서기', 이해인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등 100만부 넘게 팔린 시집이 종종 등장했다. 하지만 떠들썩한 대중적 호응의 반대편 극단에는 "대중에 야합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너무 오래 (아내의) 무덤가를 배회하고 있다"(최두석) "눈물을 사랑하는 대중 감성에 영합"(심상운)이라는 비판이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창작과비평' 등 주로 진보 진영 문단에서 제기됐던 대중시 비판과 달리 당시 정권에서는 도종환의 시를 참여시라는 이유로 탄압했다는 것.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접시꽃 당신)라는 구절을 트집 잡았고,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믿음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암병동)라는 구절이 무슨 함의(含意)냐고 캐물었다. 시를 발표할 때마다 교육청으로부터의 호출, 고향인 충북 청원의 한 중학교에서 지금은 폐교가 된 옥천 한 분교로의 느닷없는 전근, 위암 투병 중이던 아내의 죽음, 노부모에게 맡긴 핏덩이 자식들, 학교 인근 하숙방에서 홀로 고통을 참으며 써낸 시편, 앞장섰던 전교조 활동 등은 그 앞뒤쪽의 사연들이다.

지금은 많이 회복했지만 최근 10년 동안 시인은 많이 아팠다. 병원에서는 '신경실조'라는 낯선 병명을 알려줬다. 영양 부족으로 생긴 영양 실조처럼 과부하가 걸린 일과 스트레스로 신경이 견디지 못하는 병이라고 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했고, 감기 한번 걸리면 일년 내내 끙끙 앓아야 하는 병이었다. 5년 동안은 충북 보은의 한 산방(山房)에서 두문불출하며 요양했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가 복직됐던 학교를 다시 스스로 그만둬야 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외부 활동을 투병 전의 10분의 1로 줄인 요즘은 글쓰기와 강연이 주업(主業)이다. 다음 달이면 5년 만의 새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가 나오고, 산문집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도 가을이면 출간된다.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시간 속에 잊혀지고 지워지는 시집들이 대부분인 시대, 도종환은 행복하다. 대입 수능시험에서는 여전히 그의 시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를 '제망매가'(월명사)나 '초혼'(김소월)과 더불어 제시하며 죽음과 사랑의 의미를 묻고, 강연을 위해 찾은 중·고등학교마다 '접시꽃 당신' 초판본을 가져와 어머니의 이름을 꼭 적어달라며 사인을 부탁하는 학생들이 있다. 아내와의 사별 후 새로 결혼하면서 독자들에게 '배신'이라는 험한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이번에 결혼한 아들은 사실상 새 아내가 키워 장가보낸 자식. 시인은 "'접시꽃 당신'은 내 이름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킨 시집이지만,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리고 내가 넘어야 할 산(山)"이라고 했다. 자신을 치유했던 보은의 산방에서 시인은 오늘도 꿈을 꾼다. 슬픔을 내다 파는 게 아니라 슬픔을 제대로 슬퍼하기 위해. 사랑의 아픔을 떠들어대는 게 아니라, 아픔을 사랑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