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색깔 벗은 '김기덕 키드'

영화 '풍산개'는 무겁고 어려운 영화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한국 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이 제작과 각본을 맡고, 그의 조연출 출신인 전재홍(34) 감독이 만들었으니 그럴 만했다. 그러나 13일 시사회에서 공개된 영화는 달랐다. 남북 분단이라는 딱딱한 소재를 다뤘지만 액션에 멜로, 코미디까지 어우러진 대중성 강한 작품이었다.

휴전선을 넘나들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무엇이든 3시간 만에 배달하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풍산(윤계상)은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고위층 간부의 애인 인옥(김규리)을 데려오라는 임무를 받는다. 두 사람은 철조망을 넘다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를 눈치 챈 북한 간첩단과 남한 요원들은 각각 이들에게 위험한 제안을 해온다.

이날 서울 왕십리 한 극장에서 만난 전 감독은 '풍산개'를 "유머가 들어간 액션멜로로 만들려고 했다"고 밝혔다. "6·25를 겪지 않은 세대들이 재미있게 보면서 남북한 관계를 생각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을 다닌) 오스트리아에서 본 북한 사람들은 나와 똑같이 생겼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며 "그들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너무 슬펐고, 분단과 통일에 계속 관심을 갖게 됐다"고도 했다.

전 감독은 외할아버지가 원로화가 김흥수 화백이다. 그는 1993년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하다 오스트리아로 가 성악과 경영학을 함께 배웠다. 오스트리아에서 대학을 마칠 때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김기덕 감독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이듬해 김 감독이 칸 영화제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칸에 찾아가 자신이 만든 단편을 건넸다. "자네 특이하네"라는 말을 들은 뒤 곧바로 김 감독 연출부에 들어갔다.

전 감독은 지난가을 스승으로부터 풍산개 시나리오를 받곤 "김기덕 필름의 기존 영화가 아닌, 나의 색깔이 담긴 영화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희로애락이 다 담기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풍산개에 액션과 멜로, 코미디 등 다양한 요소를 넣었다"는 설명이다. 시사회를 본 평론가들이 "김기덕 키드가 만들었지만 '김기덕의 영화'는 아니었다"고 한 걸 보면 전 감독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다.

남자주인공 풍산 역을 맡은 윤계상은 영화 내내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처절한 눈빛과 액션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전 감독은 "사람들은 윤씨를 아이돌 그룹(god) 출신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배우로만 생각하지만 나는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며 "작가주의 영화만 하는 감독이라고 규정지어진 나와 비슷한 처지인 것 같아 더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윤계상은 다른 모든 스태프와 함께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 전 감독이 영화 비몽 연출부를 하면서 알게 된 일본 톱스타 오다기리 조도 '엑스트라'로 나온다.

전 감독은 지난 5년여 영화계 생활에 대해 "첫 단편('물고기')과 장편영화('아름답다')로 각각 베니스와 베를린 영화제를 다녀왔지만 아무도 찾지 않더라"고 했다. "예술영화를 만드는 젊은 감독이라고 낙인 찍히니까 다른 영화를 만들 기회도 전혀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너무 힘들어서 영화를 놓아버리고 싶었을 때 김 감독님이 끝까지 잡아줬다"며 스승에 대한 각별한 정을 나타냈다.

"앞으로 어떤 영화가 찍고 싶으냐"고 물었다. 전 감독은 "작가주의고 뭐고,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 이때가 아니면 못 만들 영화를 만들 것"이라며 "액션영화처럼 나이가 들면 만들기 힘든, 호흡이 빠른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