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6·25 때 얼어 죽을 뻔한 네 아이를 살린 어머니

추웠다. 볼이며 코, 귀때기는 예리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팠다. 허허벌판인 충주 달래강변엔 추위를 막아줄 그 무엇도 없었다. 뒤돌아보기도 무서운 뒷산 너머에서는 포성이 울부짖듯 으르렁거렸다.

1950년 겨울 기세 좋게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국군은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덤비는 중공군을 만나면서 퇴각을 시작했다. '1·4 후퇴'였다. 1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과 겹친 적(敵)의 대공세였다. 한밤중에 어머니를 따라나선 우리 가족이 눈보라 속을 걷고 또 걸어 당도한 곳이 달래강변이었다. 강엔 다리가 없었다. "왜 나룻배도 한 척 없을까?" 어린 나는 원망스러웠다. 낡은 배 한 척이 강 건너 쪽에 반쯤 물에 가라앉아 있었다.

적군이 쳐내려 오면 가장 먼저 표적이 될 아버지는 한발 앞서 남으로 떠났다. 경찰이던 아버지는 6·25 전쟁 직전 38선 부근에서 교전 도중 총에 맞아 요양 중이었다. 그래서 그날 우리 가족의 총대장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머리 위에 솥이며 식기 따위를 이고 등엔 두 살짜리 남동생을 업었다. 누나도 병든 여동생을 업고 쌀자루며 옷 보따리를 한데 묶어 머리에 얹었다. 열한 살 소년이었던 나는 덩치가 큰 이불 보따리를 멜빵에 묶어 짊어졌다.

우리 가족의 피란길은 벌써 세 번째였다. 6·25 발발 직후와 그해 늦가을 적의 패잔병에 쫓겨간 마석 피란, 그리고 이듬해 1·4 후퇴였다. 70대 전후의 춘천 시민이라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참담한 기억일 것이다. 춘천에서 세 번째 피란 보따리를 싼 사람들은 신남, 홍천 양덕원, 원주를 거쳐 충주로 빠지기 위해 달래강변에 당도했다. 피란민이 많이 몰린 곳은 수심이 낮은 여울목이었지만 물살은 더욱 거셌다. 가족들은 어머니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어떻게 해요. 어머니?"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도 건너는데 죽기야 하겠니?"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버선을 벗고 치마를 허리 위까지 걷어올려 동여매고는 맨 앞에서 물속으로 빨려들 듯 뛰어들었다. 이어 누나, 그리고 내가 그 뒤를 따랐다. 처음엔 발바닥을 마비시키던 얼음물이 점점 더 깊어져 어머니 허리까지 차올랐다. 사타구니가 얼기 시작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어머니 손을 잡았다. 넓은 강을 다 건너 강변에 얼굴을 드러낸 납작돌을 밟으니 이번엔 돌들이 마치 악어가 먹잇감을 만난 듯 언 발바닥에 달라붙었다.

어머니가 머리에 얹었던 짐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젖은 옷을 갈아입을 내복이 없었다. 내복은 짐이 무거워 누나가 강 저편에 버린 옷 보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되돌아서 달래강 여울을 다시 건너기 시작했다. 나는 누나와 함께 "그까짓 옷 보따리 내버리자"고 고함쳤으나 어머니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온 후에야 우리는 모두 마른 내복으로 갈아입고 동사(凍死)를 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발바닥은 미끈덕거리는 물속 칼돌에 베어 여러 곳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강변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 외딴집이 한 채 있었다. 불빛이 가물거리는 그 집은 우리 가족의 희망이었다. "저기까지 가야 살 수 있다." 어머니는 비장했다. 그러나 집은 먼저 강을 건너온 사람들에게 점령당해 아비규환이었다. 안방과 윗방, 사랑채와 부엌, 마루까지 콩나물시루 같았다. 우리 가족은 집 밖에서 조금씩 얼어가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머리에 인 짐을 내려놓더니 집 뒤란으로 갔다. 잠시 후 그곳에서 뛰어나온 어머니는 "불이야! 불이야! 불, 불, 불," 소리를 있는 힘껏 크게 질렀다. 집 뒤란에선 정말 볏짚단에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었다. 강바람을 타고 집 추녀로 금세 옮아 붙을 것 같은 기세였다. 방을 차지하고 있던 안방 사람 일부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머니가 독수리처럼 내 손목을 낚아챈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떼밀려 가까스로 윗방 구석 자리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어 누나가 어머니와 나 사이를 헤집고 방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집 뒤란에서 기세 좋게 불붙은 볏짚단들은 누군가에 의해 사그라지고 우리는 방 안에서 꽁꽁 언 몸을 녹일 수 있었다. 나는 그날 어머니가 그렇게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것을 난생처음 보았다. 얼음이 떠 내려오던 달래강을 두 번씩이나 건너던 고집도 처음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이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기지와 모정(母情) 때문이었다. 나는 이따금 겨울 달래강을 지날 때마다 강가에 서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머니를 회상한다. 어머니는 지금도 이 달래강에 살아계신다. 달래강이 죽지 않고 오늘도 흐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