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마음도 닦아주는 구둣방

"그랑께 문을 여는 그 순간부터 면접이여. 너무 세게, 너무 살살 열어도 안 돼야. 천천히, 겸손한 미소로 사뿐사뿐 들어가야 쓰겄제잉~"

이 진지한 '취업면접 상담'이 열리고 있는 곳은 구둣방이다. 원광대(전북 익산) 학생회관 뒤편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성냥갑처럼 앉은 1.5평 구둣방. 주인장 최선각(57)씨의 입은 쉬지 않는다. "구두가 너무 고생한 거 있지. 불쌍해 죽겄다~" "워매, 새 신발이 되야부렀네. 영화배우 뺨치게 생겼으니 뒤태가 을매나 아름다울꼬?" 구둣방은 교내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도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드는 사랑방이다. "워매, 앞축이 쩍 벌어졌어야. 물걸레를 그리 열심히 밟아대니 안 벌어지고 배긴다요?"

'여실재'라는 문패를 단 이 구둣방은 원광대 명물이다. 1948년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64년째. 손바닥만 한 공간이지만 책 10여권 꽂힌 작은 서가가 있고, 찻물을 담아놓은 보온병과 각종 차가 준비돼 있다. 구둣방이 세상에 알려진 건 지난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주최한 '손안애서(愛書) 사진공모전'을 통해서였다. 이 학교 대학원생인 임정매씨가 '마음을 닦는 구둣방'이란 제목으로 공모한 사진이 장려상을 받았다.

세월만큼이나 구둣방에 얽힌 사연도 재미있다. "구둣방 1대 주인장이 백남근옹이요. 다섯 살 때 구두 만지는 기술 배워 일곱 살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구둣방에 급사로 들어갔는데, 해방되고 나서 일본 주인이 도주헌께 구둣방을 그대로 인수하게 됐답니다. 기쁨도 잠시, 구둣방에 화재가 나서 거리로 나 앉게 된 것을 단골이었던 원불교 종부님이 거두셨다지요. 원광대로 데려와 자리 한 칸 마련해준 거지요."

2대 주인장 최씨의 사연도 못지않다. 구례가 고향이지만 22년 6개월 동안 서울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손에 구두약을 칠하게 된 것은 IMF 외환위기 때문이다. "사업에 덥석 손을 댔다가 퇴직금 몽땅 날렸지요. 도무지 출구가 안 보이니 죽어야쓰겄다 마음먹고, 280㎞ 속도로 자동차를 몰았지요. 핸들만 살짝 꺾어도 죽을 판인디, 웬일인지 나도 모르게 차를 멈추고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데요. …별이 빛나더라고요, 별이."

자동차를 멈춘 곳이 익산이다. 그곳에 셋방 하나, 자전거를 한 대 구해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원광대로 들어왔다가 우연히 구둣방을 발견했고, 할아버지 주인장을 보는 순간 '바로 저 일이다' 싶더란다. "연세가 많으니 손도 떨리시고, 곧 새 주인을 찾겄다 싶데요. 하하! 그날부터 매일 아침 마당 쓸어드리며 기술을 배웠지요."

'마음을 닦는 구둣방'이라는 애칭은 2001년 최씨가 인수하고 나서 생겼다. 원광대 구둣방이니 자연 원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고, 당장 자신의 마음부터 다스리기 위해 새벽기도 나가고 경전 공부에 열심을 냈더니 '원무'라는 직책을 부여받았다. 구둣방 일과를 마치면 최씨는 원광대 병원으로 간다. "그날 수술받은 분들 기도해 드리러요. 교회 다니는 분들은 '이단'이라고 문전박대허시지만, 아주 보람차지요."

그는 익산으로 내려온 뒤 4년 만에 가족들과 다시 합쳤다고 했다. "그 어려운 시절 없었으면 죽을 때까지 사람 못 되었을 거요." 그는 1000번을 넘어져도 그걸 스승 삼아 한 번 제대로 일어서면 성공 아니냐며 히죽 웃었다. "내 하는 일이 우주를 살리는 일이라. 구두의 생명줄을 살리니 이걸 신고 다니는 주인의 생명이 살아지고, 그 건강한 기운이 우주에 뻗치고. 남들이 궂은일이네 허접한 일이네 손가락질해싸도 내가 즐겁고 보람을 느끼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요. 안 그렇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