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걷기 편한 거리 만들기, 인사동에서 복병 만나다

서울 종로 일대 노점상을 특정 지역으로 이전시키고 시민들이 걷기 편한 도심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서울 종로구의 '걷기 편한 거리' 조성 사업이 인사동에서 예상치 못했던 복병을 만났다.

지난 2006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전 몇 차례 들러 청각장애인 부부가 풀빵을 굽는 것을 도왔던 '인사동 풀빵 장수' 손병철(53)씨가 이전 대상 노점상에 포함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것. 손씨는 지난 4월 청와대에 "계속 가게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넣었고, 청와대도 여기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오후 찾은 인사동에선 손씨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주변 상인들은 "구청에서 리어카를 가져가버려 당분간 장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종로구나 서울시 공무원들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까지 관심을 갖다 보니 지자체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용역을 동원해 단속에 나서도 경찰은 팔짱만 끼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말이면 하루 10만명이 찾는 거리를 좀 더 걷기 편하게 만들어보자는 것인데 일이 꼬이고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올 초부터 인사동 사거리 북쪽의 노점상 16곳을 인근의 '특화거리'(인사동 사거리~낙원상가)로 옮기는 것을 추진해왔다. 2009~2010년 종로 1~5가에 노점상 647곳을 주변 이면도로에 조성된 특화거리로 이전시킨 데 이어 벌이고 있는 후속 작업이다. 이후에는 대학로 노점상 117곳과 왕산로(흥인지문~신설동 로터리) 137곳도 순차적으로 '걷기 편한 거리'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인사동 노점상들은 "구청에서 옮기라고 하는 곳은 유동인구가 적어 생계가 위태롭다"며 이전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에도 종로구청 담당자가 현장에 나와 노점상측과 해결 방안을 논의했으나, 진전이 없었다. 16일에는 구청측이 3시간가량 노점상들의 거리 진입을 막기도 했다. 노점상 김모씨는 "먼저 특화거리가 활성화된 다음에 이전을 하면 모를까 '상생'하자고 하면서 생계가 위협을 받을 것이 뻔한 사지로 우리를 내몰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노점상들은 몇 차례 용역들과 몸싸움까지 겪은 터라 무척 격앙돼 있었다. 최근 노점상연합회측은 7개는 원래 자리에 남고 나머지만 다른 곳으로 옮기는 '수정안'도 제시했으나, 종로구는 이전 예정지 도로 정비도 끝냈고 대형 파라솔까지 설치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현재 종로구청은 단속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손씨 같은 장애인들을 우선 배려하겠다는 의사를 충분히 전달했다"며 "다만 지금은 노점상들이 단체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손씨로서도 어떻게 하기 힘든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통령과 연이 있는 풀빵장수 아저씨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솔직히 난감하다"며 "청와대에서 어떻게 하라는 공문이나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