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수하물에서 기왓조각이"… 문화재 감정위원 긴급 출동해보니

"수하물에서 기왓조각이 나왔는데 문화재로 의심됩니다."

14일 오후 2시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 문화재감정관실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중국행 비행기에 실리는 수하물에서 문화재로 추정되는 반월형(半月形) 와당(瓦當)이 발견된 것. 전화를 끊기 무섭게 최태희(59) 문화재감정위원은 출국장 엑스레이 보안검색실로 향했다. 보안 검색 중 발견된 와당을 세심하게 살피는 그의 눈빛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현대작(모조품)입니다."

최 위원을 숨죽여 지켜보던 보안검색실 관계자들에게서 일순간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최 위원은 비문화재확인서를 작성해 넘겼다.

인천공항을 비롯한 전국 주요 공항·항만 등 15곳에 설치돼 있는 문화재감정관실은 문화재로 추정되는 물건을 감정해 문화재 국외 반출을 막는 역할을 담당한다. 문화재 관련 분야의 석·박사 학위를 가진 감정위원 7명이 교대로 1년 365일 24시간 '문화재수비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인천공항 감정관실은 지난해 3775건의 문화재 추정 예술품을 감정, 29건의 문화재를 찾아 반출을 막았다. 감정 품목은 고문서와 회화, 조각, 공예품, 도자기 등 문화재 전반을 아우른다. 근대 예술품이라 하더라도 제작된 지 50년이 넘었고 보존 가치가 있다면 반출 불가의 문화재가 될 수 있을 만큼 판정 기준이 엄격하다. 김형우(56) 감정위원은 "한국처럼 문화재 약탈을 당했던 중국의 경우도 우리의 반출 규제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했다.

인천공항 감정관실은 올해 들어서만 벌써 10여건의 문화재를 찾아내 반출 불가 판정을 내렸다. 지난 3월엔 18세기 청나라의 문인이 조선에 보낸 국죽도(菊竹圖)를 찾아냈다. 한·중 문화 교류를 엿볼 수 귀중한 사료(史料)를 지켜낸 것이다. 조선 말기의 백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민화, 20세기 초반에 제작돼 단순한 골동품으로 알았던 은장도도 반출이 금지된 문화재 판정을 받았다.

반출 불가 판정을 받은 문화재는 전국 감정관실의 반출 주의 목록에 오르기 때문에 보존 가치가 높거나 도난당한 문화재는 반출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이숙희(51) 감정위원은 "2003년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국보 제247호)을 훔쳤던 절도범들이 해외 반출을 시도했으나 공항의 문화재 보안 검색이 강해 결국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로 판단되는 물건을 소지하고 나갈 경우 출국에 앞서 문화재감정관실에 들러 감정을 받으면 되지만, 세관 검색대에서 적발되면 문화재 밀반출범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재의 개념과 문화재 반출 규제에 대해 잘 모르고 공항에서 문화재 반출 불가 판정을 받는 경우도 매년 5~10건 발생한다. 일본 유학을 떠나는 학생이 일본 지인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자신의 집 TV 위에 놓여 있던 낡은 화첩을 들고 출국하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19세기의 민속 문화재로 판명된 경우도 있었다. 2008년 한 이민자는 캐나다로 출국하며 부친 때부터 쓰던 제기(祭器)를 들고 나가다 문화재로 판정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최태희 위원은 "총포나 마약의 반·출입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문화재 반출에 대해서는 인식이 부족하다"며 "한 번 국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되찾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홍보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