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동네 의사 송태호의 진료일기] 감기 닮은 A형 간염

여름에는 병원을 찾는 환자가 줄어든다. 급성 상기도(上氣道) 감염, 즉 감기 환자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이 많은 도심의 병원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냉방이 감기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영국 속담에 "감기는 병원에 다니면 1주일, 집에서 푹 쉬면 7일"이란 말이 있다. 감기는 병원에 다닌다고 빨리 낫는 병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동네의사 초년 때 나는 가벼운 감기 환자들에게 처방을 하지 않고 "적절한 수분 섭취와 휴식만으로도 충분하다"며 환자들과 입씨름을 하기도 했다. 환자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에 집에서 푹 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애들은 애들대로 학교와 학원에, 직장인들은 회사일에, 주부들은 가사에 항상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도 환자들에게 "감기는 의사가 낫게 해주는 병은 아니지만, 지금 불편한 증상은 해소시켜 드리겠다"며 타협하고 있다. 하지만 1주일 이상 감기 증상이 계속되면 다른 병이 감기의 탈을 쓴 건 아닌지 꼭 확인해 봐야 한다.

평소 건강하다는 40대 여자가 감기 때문에 내원했다. 우리 병원이 있는 아파트에 살지만 일하는 대형 마트가 멀리 있어 직장 근처 병원에 다닌 지 사나흘 된 환자다. 자도 자도 자꾸 눈이 감긴다고 했다. 기침·가래보다는 주로 몸살을 앓았던 이 환자는 직장의 냉방이 너무 심해 감기에 걸렸다고 투덜댔다.

일단 감기약을 하루치만 처방하고 다음날 다시 보니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혈액검사를 해보니 간 효소 수치가 너무 높았다. 서둘러 큰 병원에 입원해 급성 A형 간염으로 진단받고 치료 후 완쾌됐다. 대개 40대 이상은 95%가량이 A형 간염에 대한 항체가 있어 A형 간염을 예상치 못했는데, 이 환자는 항체가 없는 5%에 속해 있었다.

위생이 좋지 않았던 과거에는 대개 어린 시절에 A형 간염에 걸려 감기 같은 증상으로 나타났다. 그 경과도 감기처럼 별다른 후유증 없이 잘 나았다. A형 간염은 그러나 성인이 걸려 후유증 없이 낫지 않으면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고, 간 이식을 받지 못하면 급기야 사망할 수도 있는 극과 극을 달리는 병이다.

요즘 신생아부터 중학교 정도의 아이들까지는 A형 간염 예방접종이 대개 이뤄져 있다. 그러나 그 나이 이상의 경우엔 접종이 안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여자 환자도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와 단체로 예방주사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