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부드러운 무술 태극권, 싸움꾼 인생 바꿔"

이찬 관장은 한국인으로는 가장 먼저 태극권 문파에 정식으로 입문했다. 1989년 34세 때 세계 태극권의 명인으로 불리는 국홍빈·진정의(61·싱가포르) 대사의 입실전인(入室傳人·스승의 집에 기거하면 배운 제자)이 됐다. 국내에 태극권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1990년 태극권 전문 도관을 처음 연 것도, 이듬해 한강시민공원 스포츠교실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양식(楊式) 태극권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그였다. 1993년 홍콩 배우 이연걸이 '태극권'이라는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이 관장은 그와 함께 시연회를 열었다. 두 사람은 무술의 뿌리가 같은 동문사형제다.

한글로 된 태극권 교습서를 쓴 것도 사실상 그가 처음이었다. "1991년 홍콩에서 1주일 정도 태극권을 배웠다는 사람이 중국 책을 참고해 책을 하나 냈는데, 자세와 내용이 너무 엉터리였어요. 그래서 내가 1년 반을 달라붙어 태극권강좌를 썼어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중2 때 학교를 중퇴하고 정규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그는 독학으로 중국어를 배워 태극권을 익혔다. 이 관장은 번역서 2권을 포함해 총 5권의 책을 썼다. 이번에 펴낸 '30분 태극권-테라피 타이치'(동아E&D)는 그 결정판이다.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했지만 태극권의 매력에 빠져 사범을 하고 있는 둘째 딸 가인(26)씨가 동영상과 사진 모델을 자청했다. 부인(54)과 큰딸 가회(29)씨도 20년째 태극권을 하고 있다.

1970년대 중·후반, 혈기왕성한 20대였던 그는 겁 없는 삶을 살았다. 태권도에다 중국 무술까지 갖췄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피카디리, 명보극장의 관리직원이었던 그는 당시를 "생각조차 하기 싫은 설익은 무도인(武道人)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매일 암표상과 싸우고, 종로3가의 건달들과 어울려 다니며 주먹을 휘둘렀고, 패싸움에 초청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피를 옷에 묻히고 집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어머니께서 부엌칼을 들고 와서 '계속 싸움질을 하면 칼을 물고 죽겠다'며 울부짖으신 적이 있었어요." 이 관장은 그날 이후로 싸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극장을 그만두고 1980년 정무도관을 열었다. 당랑·소림권을 가르치며 본격적인 무도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그는 태극권에 심취됐다. "부드러움을 통해 강함을 이긴다는 태극권의 정신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적이 강하게 나오면 뒤로 물러나고, 적이 후퇴할 때 앞으로 나아가는 태극권의 동작은 변화무쌍하다.

막상 태극권을 정식으로 배우려고 했지만 가르쳐줄 사람도 책도 없었다. 중국어로 된 태극권 교습서를 어렵게 구해 친구(최인국)와 함께 독학을 했다. 화교였던 친구 동생과 한문에 조예가 깊었던 그의 형 도움을 받았다. 태극권의 원리를 터득하며 배워갈수록 그의 급하고 과격한 기질도 바뀌었다. "성격이 느긋해지고 온화해지는 것을 체험했죠." 그는 양식 태극권을 '양생술(養生術·건강관리를 잘해 장수를 누리는 법)이자 스포츠이고, 호신술이자 생활 속의 도(道)'라고 정의했다.

태극권을 한 번 하면 오장육부에 목욕과 안마를 해준 것과 같다고 했다. 이런 효과 때문에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구자홍 LS그룹 회장 부부, KT계열사인 케이티에스의 노태석 대표, 곽성문 국회의원, 양승택 전 정통부 장관도 그에게 태극권을 배웠다. 이 관장은 "양식 태극권의 장점은 몸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운동 효과는 엄청나다는 겁니다. 정·기·신(精·氣·身) 단련에 이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