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글로벌 최고"라고? 한국 1등 기업, 브랜드 가치는 '세계 2류'

현대자동차는 올 2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미식축구 결승전(수퍼볼) 때 1270만달러(140억원)의 TV광고비를 썼다. 1초당 광고비는 무려 1억원. 정규시즌까지 합치면 총 4170만달러(450억원)의 광고비를 지출해 전체 광고주 가운데 18위에 올랐다.

현대차가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미국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아직 '일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 브랜드 평가기관인 '브랜드 파이낸스'의 조사 결과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는 글로벌 기업 가운데 213위(43억달러)에 그쳤다고 포브스 온라인판이 17일 보도했다. 일본 혼다차는 현대차보다 판매대수가 적지만 브랜드 가치(163억달러)는 오히려 4배가 높았다. 현대차가 뛰어난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해외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그들의 머릿속까지는 파고들지 못했다는 뜻이다.

◆현대차·삼성전자 덩치 키웠어도 브랜드는 이류

IT업계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LG전자가 TV·휴대폰·반도체·LCD(액정표시장치) 시장에서 점유율 1~2위를 다투고 있지만 브랜드 가치는 해외 경쟁기업에 한참 떨어진다.

'브랜드 파이낸스' 조사에서 세계 최고 브랜드 기업은 구글(가치 443억달러)이었다. 삼성전자는 18위(215억달러). 매출은 삼성전자가 구글보다 4배가량 많아도 브랜드 가치는 구글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번 조사 결과는 그나마 한국 기업에 호의적이었다.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컨설팅그룹 밀워드브라운이 공동 조사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 중에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67위) 한 곳밖에 없었다. 일본 기업은 도요타·NTT도코모 등 6곳, 중국 기업은 10곳이 100위 안에 올랐다.

이 조사에서 1위에 오른 애플의 '아이폰'용 케이스 뒷면에는 대부분 500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은 애플의 상표(로고)가 붙어 있는 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사람들이 케이스를 씌워도 반드시 애플 로고가 보여야 멋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용 케이스에는 이런 구멍이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탓 말고 스스로 가치 키워야

기업들은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으로 한국의 낮은 국가 브랜드를 꼽는다. 한 대기업의 마케팅 담당 임원은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은 중국·일본보다 인지도가 낮고, 북한 때문에 부정적 이미지가 쌓여 기업 브랜드를 키우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그렇지 않다. '브랜드 자산'이란 개념을 최초로 만든 저명한 경영학자 데이비드 아커 미 UC버클리 명예교수는 "정치·외교적 이슈가 기업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삼성·현대차·LG 같은 대기업이 국가 브랜드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실제 핀란드를 대표하는 세계 최대의 휴대폰 회사 노키아가 최근 2~3년간 스마트폰 경쟁에서 애플에 밀리자 핀란드 전체의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홍성태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할리 데이비슨' 하면 명품 오토바이가 떠오르는 것처럼 현대차나 삼성전자도 독특한 개성을 갖춰야 브랜드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