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적금이라더니 그 적금

올 들어 5월 말까지 주요 시중 은행들이 내놓은 예·적금 상품 54개 중 새로운 아이디어를 담은 것은 10개 중 하나를 겨우 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존 상품을 이름만 바꿨거나 성격상 정기적으로 나오는 주가지수 연동예금이 전체의 83%에 달했다.

이는 본지가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7개 주요 시중 은행(신한·국민·하나·우리·기업·농협·외환)의 올 1~5월 예·적금 상품 내역을 분석한 결과로 은행들이 신상품 개발보다는 '미투(me-too)전략'을 통한 영업에만 매몰돼 있음을 보여준다.

조사결과 5월 말까지 은행들이 새로 내놓은 상품은 총 54개였고, 이 중 25개는 주가지수연동 정기예금이었다. 신한·하나은행 등이 특히 주가지수연동 상품을 많이 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시중 은행 상품개발본부장은 "주가지수연동 예금은 정기예금보다 목표 금리가 높고 원금 보장이 되지만 은행이 머리를 써가며 만들 필요없이 외부에서 가져올 수 있는 상품"이라고 말했다.

기존 상품을 모방해 다시 낸 경우도 20개에 달했다. 이미 있는 외화 정기예금과 공동 구매 예·적금, 대학생, 직장인 대상 예금, 카드 포인트 연계 상품 등을 신상품으로 포장한 사례였다.

그나마 이자를 미리 고객에 주거나 스포츠·영화 흥행과 연결해 우대금리를 주는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반영한 상품은 단 7개에 불과했다. 다른 시중 은행 상품개발팀장은 "영화, 스포츠예금도 전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나마 신선한 시도"라며 "진정한 의미의 신상품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은행권의 신상품 개발이 미진한 이유는 최근 풍부해진 유동성(자금) 때문에 가만 앉아서도 은행에 돈이 몰리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4월 현재 국내 은행의 총예금 잔액은 897조860억원으로 작년 말(873조8900억원)보다 23조1960억원이나 늘었다.

이처럼 은행들이 증권사에서 인기를 끈 상품을 베끼거나 천편일률적인 상품을 내놓는 관행에 대해서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시중 은행 임원은 "최근 고액 자산가들이 은행에서 증권사 PB센터로 이동하는 것도 상품 및 서비스 경쟁력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며 "은행들이 고객이 원하는 상품 개발을 게을리할 경우 증권이나 보험 등 다른 업종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