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擧事 타이밍

〈제4보〉(83~100)='매파'와 '비둘기파'는 반상(盤上)에서도 엄존한다. 김지석과 퉈자시는 전형적인 '매파'형 기사들. 한·중 양국 싸움꾼의 계보를 잇는 소장파 간판끼리 화끈한 힘대결을 펼치고 있다. 다만 판의 흐름은 '맞받아치기'가 아닌 '공격 대 타개'로 전개 중이다. 초점은 여전히 좌변 백 대마의 생사 여부. 산 듯, 죽은 듯 헷갈리는 이 백 곤마의 처리방식이 승부에 직결될 것이다.

백△는 83과 84자리를 맞보는 수. 흑이 83으로 세력 쪽을 택하면서 백의 귀살이도 결정됐다. 91까지 이런 정도로 처리될 곳. 그렇다면 지금 형세는? 집으론 백이 약간 좋지만 흑은 측량이 불가능한 두터움을 보유하고 있다. 그 두터움을 배경으로 흑은 좌변 백 대마에 창을 겨눌 거사(擧事) 타이밍을 저울질 중이다.

따라서 백은 바로 이때가 좌변을 보강할 찬스였다. '가'에 두어 살아 놓았더라면 나쁘지 않은 형세라는 결론. 92는 지나치게 실리를 탐한 수로 패착의 혐의가 짙다. 98까지 또다시 지갑을 불렸지만 그 순간 99를 얻어맞으면서 좌변 백은 본격적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게 된다. '나'에 호구 쳐도 참고도처럼 사는 궁도가 안 나온다. 처자식 내팽개치고 허랑방탕 전국을 떠돌던 백, 뒤늦게 귀가해 100의 비상수단으로 버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