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세계음악치료대회'를 여는, '음악치료사' 최병철

'음악치료 세계학술대회'가 내달 초 서울서 열리고, 47개국 1200여명의 '음악치료사'가 참가한다고 들었을 때, "별 대회가 다 있구나" 했다. 나는 그런 수준에서 이 대회의 조직위원장 최병철(54·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땡볕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요즘 더위에 기력이 없다. 이를 이겨낼 음악을 처방해달라.

"음악이 에어컨은 아니다. 헨델이 군주의 물놀이를 위해 만든 '워터뮤직'이나 '결혼행진곡'처럼 극소수 예외는 있지만, 음악은 원래 '예술'이다. 기능용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모차르트가 태교(胎敎)를 위해 음악을 만든 적은 없다. 다만 우리가 음악의 어떤 요소를 기능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직접 더위를 식혀주진 못하지만, 개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줘 상쾌함을 느끼도록 해준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쾅쾅 울리는 음악을 듣는 젊은 친구들을 본다. 이들은 얼마나 음악적으로 치료되고 있나?

"록 음악은 90dB 이상 크기일 때 대뇌(大腦)에 쾌감을 준다(참고로 일상 대화는 60dB, 집시법시행령 소음 규제는 80dB). 하지만 고막을 잡고 있는 두 근육은 복원력이 좋지 않다. 큰 소리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면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 나중에는 큰 소리가 없으면 불안을 느끼는 증상에 이른다."

―음악으로 치료되는 게 아니라 음악으로 병을 얻는 것이군.

"음악을 듣는 것 자체가 치료는 아니다. 우리는 공기가 없으면 죽게 되지만 공기로 숨을 쉬는 것을 치료라고 하지 않는다. 같은 공기라도 필요에 따라 산소탱크나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치료다."

―음악으로 기분 전환만이 아니라 육신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세균을 죽이거나 열을 내리는 해열제는 될 수 없다. 그러나 평소 즐겨듣는 음악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줄이고 면역 호르몬을 증가시키는 걸로 밝혀졌다. 음악은 사람의 자율신경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말 그런지 어떻게 입증하나?

"길을 걸을 때 행진곡이 흘러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발을 맞춘다. 이는 중풍이나 대뇌 손상 환자에게 규칙적인 리듬의 음악에 따라 걷게 하면 걸음걸이가 향상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언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말은 못하는데 노래 가사는 잘 따라 부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음악이 신체에 어떻게 작용해서 그런가?

"사람의 신경전달에 음악의 리듬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몸이 음악의 리듬에 맞추는 것을 '동조화 현상'이라 부른다. 음악이 몸의 동작을 통제하는 것이다. 술에 만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도 이런 이치다."

―피트니스클럽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주는 것도 그런 효과 때문인가?

"개인마다 동작의 속도가 다른데, 피트니스클럽에서 음악을 크게 들려주는 것은 운동에 부담이 되거나 비효율적일 수가 있다. 특히 러닝머신에서는 더욱 그렇다. 개인의 신체리듬과 음악의 속도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목적을 위해 음악을 고를 때, 음악의 빠르기가 우선 중요한 요소인가?

"사람을 자극시키거나 진정시키는 음악의 일차적인 특성은 빠르기다. 그 밖의 요소로는 음색, 크기 등이 있다. 통상 심장박동의 속도(1분 70회)면 느린 음악이다. 이보다 두배쯤 되는 140 정도면 빠른 음악으로 본다. 빠른 음악은 생리적 활성화를 가져온다. 느린 음악을 들으면 사람의 몸은 이완된다."

―아침에는 빠르고 신난 음악으로 시작하는 게 좋은가?

"너무 빠르거나 자극적인 음악은 좋지 않다. 아침에는 신체가 아직 덜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쾌하면서 조금 부드러운 곡이 좋다. 식사 때는 빠른 음악보다 느린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 매장에서는 느린 음악을 들려주니 매상이 높아졌다."

―느린 음악과 매상이 무슨 관계인가?

"느린 음악에서는 사람들의 보행 속도가 느려진다. 사람들이 매장에 오래 머물러 매상이 올라간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 우리는 삼성전자 작업장과 홈플러스 매장에서 이런 음악을 담당하고 있다."

―잠이 안 올 때는?

"사람의 심장박동과 같은 박자의 음악을 들으면 도움이 된다. 메트로놈(음악 템포를 재는 기계)으로 1분에 70개의 빠르기다. 박자가 규칙적이며 멜로디가 적절히 반복되는 음악이 좋다. 음악과 사람 몸이 동조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음악이 조금씩 느려지면 심장박동도 따라 느려진다. 이는 몸을 이완시켜 숙면을 돕게 된다."

―오히려 음악을 듣는다고 더 잠 못 드는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이 같은 효과를 볼 수는 없다. 음악 소리에 신경이 쓰인다면 아마 그럴 것이다."

―기분이 울적하면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들어야 하는가?

"단조의 분위기 있는 음악을 먼저 들은 뒤 서서히 경쾌한 음악으로 바꾸면 기분 전환이 된다."

―화가 났을 때는 차분한 음악이 좋은가?

"에너지가 느껴지는 큰 소리의 음악에서 편안한 음악으로 서서히 바꾸어 가는 게 좋다. 내 경우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퀸의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를 듣는다."

―우울할 때 분위기 있는 음악, 격정적일 때 센 음악을 들으면 오히려 그 감정에 더 깊이 빠져들지 않나?

"사람의 내면 상태와 비슷한 성격의 음악을 들려주면 감정이입이 일어난다. 사람과 음악 간에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 뒤 음악을 조금씩 원하는 쪽으로 바꿔가면 마음의 상태도 그렇게 움직인다. 음악이 시키는 대로 사람이 따라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