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빗뱅킹 大戰] 고객 골프장 모셔다주고… 무슨 일만 생기면 '출동'
입력 : 2011.06.21 03:00
[下] '수퍼맨' PB만 살아남는다
금융지식·자격증 무장은 기본… 업무 外 '충성 경쟁' 치열
그래도 PB 고르는 기준은 서비스보다 자산관리 능력
B은행의 한 PB는 자녀가 없는 70대 고객의 잔심부름을 가끔 한다. 건강검진할 때가 됐다고 하면 병원 예약을 해주고, 자동차가 고장 났다고 하면 현장으로 출동한다.
요즘 PB들은 수퍼리치(Super rich·갑부)들이 부르면 어디나 달려가는 '수퍼맨'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부자를 고객으로 잡으려는 PB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객에 대한 충성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PB들의 애환
서울 대형 증권사의 한 PB는 최근 70대 여성 고객으로부터 "내가 소유한 건물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연락이 왔는데 불안하니 같이 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꾸준히 자신과 거래해준 고객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왕복 3시간 거리인 해당 건물에 다녀왔다. 그는 "고객이 나를 믿어준다는 생각으로 한편 뿌듯했지만, 이게 자산 관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PB들은 고학력 금융지식으로 무장한 금융전문가다. FP(자산관리사)부터 금융투자자산운용사(AFPK),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같은 자격증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큰손'들은 PB가 자신의 집사 역할까지 해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좋은 PB, 나쁜 PB
전문가들은 좋은 PB는 부가서비스를 잘해주는 PB가 아니라고 말한다. PB의 자질은 결국 안정적인 수익을 내면서 재산을 유지해 주는 자산 관리 능력에 의해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은행·증권사 PB센터에 10억원대 자산을 굴리는 전문직 종사자 C씨는 "회사가 판매 촉진하는 상품만 소개하는 PB에겐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서 "단기 영업보다 고객의 입장에서 길게 내다보는 PB에게만 돈을 맡긴다"고 말했다.
표성진 미래에셋증권 압구정지점 PB팀장은 "고객의 직업과 나이, 자녀의 미래 계획과 노후 계획 등 전 생애를 통틀어 재무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선 세무, 부동산, 법률 등 광범위한 지식을 활용해 머릿속에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희 삼성증권 SNI강남지점장은 "무엇보다 성실하고 정보에 민첩해야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빠르고 명쾌한 대답을 해줄 수 있다"며 "그날그날의 시장에 일희일비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균형 감각을 가진 자산 배분을 유지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영곤 신한은행 여의도PB센터 팀장은 "PB 자신이 아니라 고객을 진정으로 생각하면서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찾아주는 PB가 좋은 PB이고, 그래야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좋은 부자, 나쁜 부자
PB들이 1인당 관리하는 부자는 30명~100명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별별 부자들을 다 만난다. PB들은 대부분의 부자들은 부자가 될만한 이유가 있고, 존경할 만한 특징을 가졌다고 말한다. 최근엔 전 재산을 기부하는 등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부자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표성진 PB팀장은 "수수한 점퍼 차림으로 다니고 검소하게 생활해 부자인 티가 전혀 안 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부자들은 대부분 상대를 존중해 주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등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자라는 이유로 으스대거나, 상대를 무시하는 투로 대하는 부자들도 없지는 않다. 특히 남편이 잘나가는 관료이거나 전문직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일부 여성들은 PB가 조금만 바빠도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다며 불쾌해하는 경우도 있다. D은행 PB는 "자기가 누구 손자라고 하면서 거들먹거리거나, 상속받은 재산으로 편하게만 살려는 젊은 사람을 보면 씁쓸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