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시 농부 1500명 배출한 '농업 사관학교'

"선생님, 제가 고랑에 홈을 너무 깊이 팠나요?" "물은 이 정도 주면 될까요?"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서울특별시농업기술센터(이하 서울농업센터) 앞 실습농장에선 고구마순 심기 교육이 한창이었다. 수강생 45명은 8~10명씩 5개 '마을'로 나뉘어 길이가 2m 정도 되는 두둑 앞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서울농업센터 강대경 농촌지도사는 "평일반은 수강생의 70% 이상이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중장년층"이라며 "하지만 주말반 때는 30~40대 직장인들이 40% 넘게 찾아온다"고 했다. 교육이 시작되고 5분 남짓 지나자 하늘에선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강사가 비도 오는데 실내로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묻자 수강생들은 일제히 "계속해요"라고 소리쳤다.

'대기마을'에 속한 남자 수강생이 삽 한 자루를 들고 두둑 가운데를 기다랗게 파서 2개의 두둑으로 만들자 다른 수강생 2명은 각자 레이크를 하나씩 들고 자갈을 골라냈다. 여자 수강생 두 명이 선호미로 두둑에 홈을 파자 다른 여자 수강생 두 명이 물조리개로 조심스레 물을 부었다. 남은 두 명의 수강생은 쪼그려 앉아 서로 손발을 맞춰가며 물이 스며든 자리에 수평으로 고구마순을 심기 시작했다. 고구마순을 심기 시작하고 10분쯤 지나자 연둣빛 고구마순이 일렬로 가지런히 늘어섰다.

"와!" 수강생들로부터 기쁨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물이 땅에 스며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구마순을 심으세요. 바로 심으면 고구마순이 제대로 자리를 못 잡습니다." 농촌지도사 정재효(42)씨는 실습농장 여기저기를 분주히 돌아다니며 '초보 농부'를 지도했다.

정씨는 2007년부터 서울농업센터에서 강의를 시작해 올해로 벌써 5년째 출강 중인 베테랑 강사다. "야외에서 교육하다 보면 더운 날씨에 지치기도 하지만 눈을 반짝이며 교육에 집중하는 수강생들을 보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서울농업센터 전원생활교육은 2004년 4월 시작돼 지금까지 모두 1500여명의 수강생이 거쳐 갔다. 처음 2년간은 한 해 2개 반만 운영했지만 2006년엔 4개, 2007년엔 5개로 늘어나 2009년엔 현재와 같은 6개 반이 개설됐다.

시민들의 호응이 기대 이상이었다. 서울농업센터 조은희 주무관은 "올해 상반기 수강생 150명을 선착순 모집하는 데 5분 만에 마감됐다"고 밝혔다.

전원생활교육 커리큘럼은 전원생활·친환경농업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작물재배 이론·실습교육, 실제 전원생활 현장 탐방으로 구성된다. 강의 개설 초기에는 이론위주 수업이었으나 수강생들의 요청에 따라 2006년부터 실습과 현장견학 비율을 60% 이상으로 늘렸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며 교육기간은 5주간이다. 수강생들은 손으로 흙을 만지고 생명을 키워내는 과정을 보면서 새로운 환희를 느낀다.

수업은 조별로 진행되는데 각 조는 조원들끼리 논의해 '○○마을'식으로 이름을 정한다. 마을별로 이장(里長)을 뽑고 이장 중에서 면장(面長)을 뽑는다. 면장은 반 전체를 통솔하고 이장은 면장을 도와 수업진행을 돕는다. 면장을 맡게 된 주부 김정희(59)씨는 "마을별로 토론이 이뤄지다 보니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며 웃었다.

하반기 수강생은 오는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인터넷 추첨을 통해 선발할 예정이며 모집인원은 3개 반, 150명이다.

서울농업센터는 '이도향촌(離都向村)'족을 위한 귀농교육도 진행한다. 귀농반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영농창업자가 늘기 시작하자 2009년 3월 개설됐다. 2010년엔 귀농 후 도시로 U턴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정착할 때까지 지원하는 '맞춤형 교육'으로 심화됐다. 교육 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주는 '애프터서비스'는 다른 귀농교육기관과 차별화되는 서울농업센터만의 프로그램이다.

서울농업센터 이한호 소장은 "웰빙문화가 확산되고 베이비붐세대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전원생활 희망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