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 따라 종군… 그는 펜을 들고 戰場에 섰다

짙은 풀색 군복을 입은 군인 10여명이 태극기 꽂은 트럭을 타고 전선으로 이동하는 모습, 검붉은 전장에서 들것에 실려 나오는 부상자, 포탄으로 폐허가 된 도심에 덩그러니 놓인 보신각 종….

6·25 전쟁 때 동부전선을 종군(從軍)했던 화가 우신출(1991년 작고)씨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한 스케치로 남겼다. 1950년 9월 말부터 한 달가량 부산·포항·원산·진부령·서울 등의 상황을 89점 화폭에 담았다. 이 그림들이 가족들에 의해 '6·25 전쟁 동해전선 종군 스케치 모음집'으로 발간됐다. 유작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돼 따로 모은 것이라고 한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패주하던 때 우씨는 부산 출신 화가들과 문화예술인들의 조직인 '문총구국대'에 들어가 종군 화가로 활동했다. 그의 둘째 아들 성하(63)씨는 "총 대신 그림을 통해 국군의 용감함과 전쟁의 참상을 전하려고 전쟁터로 가 적군과 싸운 것"이라고 말했다.

우씨는 주로 동부전선에서 활약했다. 38선을 넘어간 최초의 민간인 중 한 명이다. 가는 곳마다 늘 끔찍했다. 격전을 치른 곳에선 사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고, 부상당한 어린이 머리에선 구더기가 기어나왔다. 주인 없는 집에서 잠자다가 패잔병의 공격에 혼비백산 도망친 일도 있다. 생전의 우씨는 아들에게 "차마 스케치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모습 투성이였다"고 말했다.

그가 스케치한 보신각 종은 포격으로 종루가 사라지면서 바닥에 방치된 상태였다. 폐허로 변한 서울 시가지는 처참하고, 구걸로 연명하는 피란민의 행렬은 끝이 없다. 구호품을 가져온 미군 트럭을 에워싸고 손을 내민 사람들, 몸집만 한 군장(軍裝)의 병사가 언덕 뒤에 숨어 편지를 읽는 모습도 화폭에 담았다.

하지만 참상 속에서 피어난 희망과 여유도 묘사됐다. 국군이 진주하자 숨겨둔 태극기를 들고 나와 환영하는 마을 사람들, 떨어지는 포탄 속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장엄한 일몰과 강가의 고즈넉한 풍경….

유족은 이 스케치들을 23일 전쟁기념관에 기증한다. 성하씨는 "사실 아버지는 기억하기도 너무 끔찍했기 때문인지 종군 시절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