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스핑크스

〈제9보〉(204~227)=바둑승부는 1대 1 두뇌게임이지만, 상대방이 쉴 새 없이 던져대는 퀴즈관문을 몽땅 통과해야만 살아남는 '단독 면접'이기도 하다. 테베 바위산 길목에 버티고 앉은 스핑크스는 자신이 낸 문제를 풀지 못한 행인을 그 자리에서 잡아먹었다. 김지석의 입장에선 길목을 가로막고 선 퉈자시가 바로 스핑크스 같은 존재다. 그의 질문을 벗어나지 못하면 승리도 없다.

또 한 번 격렬한 패싸움을 거쳐 212(▲)까지 우상귀 백을 살린 스핑크스가 '행인' 김지석에게 마지막 수수께끼를 던진다. "우상귀 일대 흑을 살릴 방법은?" 주변은 백설이 내린 듯 난분분(亂紛紛), 온통 하얗다. 마지막 관문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패(覇)에라도 걸린다면 역시 실패다. 어디에 길이 있을까. 스핑크스의 칼날이 바로 목덜미 위에서 번쩍이고 있다.

김지석은 망설임 없이 213이란 답을 냈다. 스핑크스는 216으로 가두며 재차 질문을 던져온다. 이때 217의 붙임이 절묘한 타개수단이었다. 221까지 날씬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살았다. 218로 참고도 1로도 흑은 잡히지 않는다. 머쓱해진 스핑크스, 몇 차례 더 집적거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길을 비켜준다. 김지석이 스핑크스를 지나 늠름하게 바위산에 발을 내디뎠다. (207 212…▲, 21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