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中 춘란배 첫 판 승리… 우승이 보인다

이세돌 九단이 제8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 3번기 첫 판을 승리, 우승까지 1승만 남기게 됐다. 27일 중국 충칭(重慶) 크라운 홀리데이인호텔서 개막된 1국서 이세돌(28)은 난적 셰허(謝赫·27) 七단을 169수 만에 흑 불계로 따돌리고 선제점을 올렸다.

이세돌은 중앙 전투에서 백의 요석(要石)을 잡고 제공권을 장악하면서 승세를 확립했다. 셰허는 이후 우상 쪽 흑 대마를 물고 늘어지며 역전을 노렸으나 이세돌의 강력한 받아치기에 오히려 자신의 대마가 궁지에 몰리자 항서를 썼다. 이세돌은 이로써 비씨카드배 포함, 세계 2관왕을 눈앞에 두게 됐다.

이세돌은 이번 대회서 저우쥔쉰(周俊勳) 쑨팅위(孫騰宇) 왕시(王檄) 구링이(古靈益)를, 셰허는 이야마(井山裕太) 조치훈 허영호를 각각 제치고 결승까지 올라왔다. 결승전은 지난해 12월 준결승 이후 6개월 만에 속개됐다.

중국이 주최하는 유일한 세계대회인 춘란배엔 15만달러(약 1억7000만원)의 우승상금이 걸려 있다. 지금까지 한국이 4회, 중국 2회, 일본 1회 우승했으나 2007년 6회 대회 이후엔 중국이 연속 패권을 가져간 바 있다. 결승전 제2국은 29일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다.

이세돌이 셰허(謝赫)와 처음 대결한 것은 2006년 5월 제11회 LG배 때였다. "어휴! 구리나 쿵제보다 훨씬 세던데…. 중국 최강자 같아요." 정신없이 휘둘리다 완패한 뒤 머리를 내저으며 내뱉었던 말이다. 3개월 후 제6회 춘란배 8강전서 설욕 기회를 잡았지만 또 졌다.

작년 10월 제12회 농심배 패배는 더 뼈아팠다. 국가대표 5명씩의 연승제 방식이어서 한·중·일 3국이 최강자를 항상 마지막에 배치하는 대회다. 4번 또는 5번 주자로 점쳐지던 이세돌은 "나 혼자 10연승해 끝내겠다"며 1번을 자청했으나 2승 후 탈락했다. 중국이 '맞춤 자객'으로 내보낸 셰허에게 막힌 것. 이번 결승전까지 이세돌의 대셰허 전적은 1승4패(비공식전 포함 2승5패)였다.

이세돌만이 아니다. 셰허는 한국 '톱텐'을 16승9패로 압도 중이다(표 참조). 국내 2위 최철한도 4판을 겨뤄 전패했다. 유일하게 3연승을 달리던 박영훈도 보름 전 LG배 16강전서 처음 패했다. 박영훈은 우승 후보 1순위 이세돌을 꺾고도 보따리를 싸야 했다. 셰허는 '이세돌 킬러'이자 '한국의 공적(公敵)'인 셈.

둘의 위상을 놓고 봐도 져선 안 될 대결이다. 이세돌은 14회나 세계를 정복하며 16개월째 국내 톱랭커로 군림 중인 한국 바둑의 간판이다. 지난달엔 숙적 구리(古力)를 눕히고 비씨카드배를 2연패(連覇)했다. 반면 중국 2위 셰허는 2007년 제6회 춘란배 3위가 국제대회 개인 최고 기록. 세계대회 4강 진입 경력도 단 3번뿐이다.

셰허에게 첫 세계 우승을 허용한다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 된다. 한국 바둑은 막혔던 물길 터지듯 허물어질지 모른다. 동시에 '천적'의 기세를 확실히 꺾을 기회이기도 하다. '셰허 파도'와 '이세돌 제방(堤防)' 간의 이번 결승전이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