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밴드, 영화 주인공 되다

2009년 1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아일랜드 그룹 '스웰 시즌'의 공연이 끝날 무렵 국내 신인 밴드 '메이트'가 무대에 올랐다. 글렌 한사드와 마케타 잉글로바로 이뤄진 스웰 시즌은 음악영화 '원스'로 세계적 인기를 얻은 밴드. 한사드가 공연 직전 세종문화회관 로비에서 버스킹(거리 공연)을 하던 메이트를 발견하고서 즉석에서 이들을 무대로 끌어올린 것이다. 앨범 한장도 내지 않았던 신인밴드는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메이트의 결성부터 이들이 스웰 시즌의 내한 무대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 '플레이'가 23일 개봉했다. 남다정 감독의 장편데뷔작으로 밴드가 노래하는 장면이 영화의 절반을 차지하는 본격 음악영화다. 메이트의 멤버들이 영화에 삽입된 음악을 직접 만들었을 뿐 아니라 주인공으로도 출연했다. 메이트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수상자 임헌일(28·기타 및 보컬), 정준일(28·건반 및 보컬)과 재즈 드러머로 활동한 이현재(23·드럼)가 모여 만든 3인조 밴드. 지난해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남자 신인 가수상을 받았다. 4월 말 군입대한 임씨를 제외한 멤버 두 명을 영화 개봉 전 서울 창덕궁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와 현실이 얼마나 닮았느냐'는 질문에 정씨는 "영화는 현실과 허구를 반반씩 섞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는 "밴드 멤버들이 싸우는 장면은 현실의 그것보다 많이 순화된 것"이라며 "밴드도 작은 사회생활과 마찬가지라서 격한 충돌이 일어날 때가 있다"고 했다.

영화는 주연들의 연기보다는 음악에 더 많은 것을 기댄다. 주인공들이 밴드를 하면서 느끼는 희열과 좌절은 대사나 연기보단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에서 절절하게 와 닿는다. 대부분의 인디밴드처럼 메이트도 "정규 음반을 내기까지 불안한 순간이 많았다"고 했다. 밴드를 결성한 2008년 무렵은 아이돌 그룹의 최고 전성기였고 홍대 안에서 흥하다 망한 인디 밴드들이 수두룩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환경을 비관하면 끝도 없기 때문에 나름 돌파구를 찾은 게 버스킹이었다"고 했다.

이들은 버스킹으로 스웰 시즌의 무대에 섰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씨는 "한사드가 우리에게 걸어왔을 때는 연주를 그만 하라고 할 줄 알았다"며 "'음악이 마음에 드니 무대에 서달라'는 얘기를 듣고선 멤버들이 세종문화회관 밖으로 뛰쳐나가 '만세'를 외쳤다"고 했다.

영화에서는 이씨가 아르바이트로 모델 활동을 하는 모습이 잠깐 나올 뿐, 멤버들의 생계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거의 없다. 스크린 밖에서의 현실은 다르다. 정씨는 "카드값 명세서가 날아오는 게 무서웠다"며 "생계를 위해 학원 레슨도 하고 호텔 로비에서 피아노 연주도 했었다"고 했다. 이씨 역시 "드럼 레슨은 물론, 고깃집 숯불 만드는 일과 온라인 쇼핑몰 모델, 결혼 반주 등 안 해본 알바가 없다"고 했다.

이들이 스스로 매긴 연기점수는 어떨까. 이씨는 "우리가 한 걸 연기라고 한다면 연기자들에게 죄송할 정도다. 이 작품을 끝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하겠다"고 했다.

정씨는 "영화를 찍으면서도 음악 할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며 "앞으론 이적 선배처럼 솔로와 그룹을 넘나들며 장르 구분없이 음악 활동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