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39] "만두 팔아 공부하는 고학생들 돕자" 기생들도 모금 공연

"엄동설한 깊은 밤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갈돕만두'를 외치며 궤짝을 짊어지고 경성시가를 방황하고 다니는 그 처량한 소리…. 이것이 경성시내 각 학교에서 형설의 공을 타고 있는 고학생(苦學生)들이다."(조선일보 1920년 12월 15일자)

1920년 이후 겨울 밤이면 경성 어느 골목에서건 "호야호야! 갈돕만두노 호야호야!"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요즘 우리에게는 암호문 같은 이 소리는 고학생들의 단체인 '갈돕회' 회원들이 학비를 벌기 위해 만두 행상을 하며 외치는 소리였다.

'호야호야'는 '갓 만들어서 따끈따끈하다'는 뜻의 일어이니 이 외침은 "갈돕회가 만든 따끈따끈한 만두를 사시오"라는 말이었다.

갈돕회는 1920년 6월 경성 고학생 50여 명이 "서로 도와 아무쪼록 공부를 계속하도록 하자"(1920년 12월 12일자)는 취지로 만든 상조단체였다. '갈돕회'라는 이름은 '갈한(추수한) 것을 서로 돕는다'는 말에서 따왔다.

경성의 고학생들은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1920년 100여 명이던 고학생은 1921년 760여 명, 1924년 1300여 명으로 늘어난다. 1922년 2월엔 10여 명의 여자 고학생들이 상조회를 만들었다.

'배움이 없어 나라가 망했다'는 깨달음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무일푼 고학생들의 생활은 참담했다. 남학생들은 만두팔이와 신문·잡지배달, 약 행상으로, 여학생들은 삯바느질과 뜨개질로 주경야독했지만 학비와 생계비를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갈돕회는 1920년 12월 학비 마련을 위해 순회 연극단을 조직, 전국을 돌았다. 여자고학생 상조회는 순회 강연회를 시작했다.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갈돕회의 평양공연은 지난 8일 열렸는 바 물밀듯 몰려든 군중은 물질로도 동정하는 것이 참된 동정이라는 생각을 갖고 공연이 끝나자 앞을 다투어 '나도 얼마 내겠소' '나도 내겠소'하며…."(1921년 8월 14일자)

이들의 향학 분투기가 알려지면서 고학생을 돕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조선일보는 "만천하 동포는 동정하라 갈돕회 학생"(1921년 2월 18일자)이라고 앞장섰다. 1921년 6월 10일 천도교당에서 열린 고학생구제회 강연회에는 4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김활란이 '갈돕만두 소리의 느낌'이란 주제로 강연했고, 1300여원(약 2600여만원)이란 거액이 모금됐다.(1921년 6월 12일자) 판소리 명창 이화중선과 대구예기조합 기생들은 경성 우미관에서 "고생하는 갈돕회 청년들을 만분의 일이라도 돕자"(1921년 3월 18일자)며 닷새간 공연했고, 무용가 최승희는 1930년 갈돕회 창립 10년을 맞아 자선공연을 가졌다.

서민들은 겨울철 이부자리, 반찬거리라도 부조했다. 그렇게 사회의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아가며 공부하는 고학생들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민족의 미래요, 희망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