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해야 산다" 철거 위기 놓인 육교의 반란

떨어진 보도와 보도를 이어주던 육교(陸橋). 한창때는 시내 곳곳에 240여개가 뿌리를 내려 시민 통행을 도왔지만 자동차 위주에서 보행자 배려로 환경이 바뀌면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서울 시내 육교 수는 180개.

단순한 육교는 사라지지만 대신 디자인을 강조한 '예술 육교'나 끊어진 녹지를 이어주는 '생태 육교'가 생겨나고 있다. 백호 서울시 행정과장은 "낡고 위험한 육교는 주민 의견을 들어 철거하고 있다"며 "앞으로 육교에 디자인을 입히거나 생태계를 되살리는 의미를 많이 담겠다"고 했다.

◆최고(最古)·최장(最長)…서울 육교 기네스북

육교는 '번잡한 도로나 철로 위를 사람들이 안전하게 횡단할 수 있도록 공중으로 건너질러 놓은 다리'라는 뜻이다. 1960년대부터 하나 둘 들어서서 1970년대와 1980년대 각각 100여개씩 만들어졌다.

서울 최고(最古) 육교는 용산구 한강초교 앞에 있다. 1967년 12월 준공했다. 연도만 따지면 아현동~서소문으로 가는 아현고가 아래 육교가 1966년생으로 가장 나이가 많지만 너무 낡아 2005년 새 육교로 바뀌었다. 1964년 12월 남산초등학교 앞에 세운 '퇴계육교'는 2009년 없어졌다. 하얏트호텔에서 남산 야생화공원으로 넘어가는 한남육교는 1970년 이전 태어났지만 생년월일이 불분명하다. 서울 시내 보도육교 평균 길이는 42.3m. 가장 긴 것은 지하철 1호선 성북역 앞에 있다. 1989년 준공했고 폭 4.5m에 길이 200m다. 가장 짧은 육교는 중랑천을 사이에 두고 성북역 육교와 1.5㎞ 떨어진 공릉2동 350-16 경춘선변 육교로 15m에 불과하다.

◆경관 강조한 '예술 육교'의 전성시대

지난 4월 완성된 영등포구 신길동과 여의도동을 잇는 '여의도 샛강 문화다리'는 국내 최초 비대칭 사장교(斜張橋)로 올림픽대로로 끊긴 두 동네를 이어준다. 생태공원을 내다보는 전망대까지 갖췄다.

서초구에 있는 '디자인 육교' 3인방은 지역 명소다. 예술의전당 부근 '아쿠아 아트 육교'는 우면산 쪽으로 비스듬히 서 있는 거대한 원형 유리판을 공 모양의 보행자 통로가 뚫고 지나가는 모양새다. 프랑스 건축가 피에르 잘리콩 작품으로 '불의 기운이 강한 우면산을 물로 식힌다'는 의미를 담았다.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앞에 V자 모양 날개를 편 '센트럴 포인트 육교' 역시 잘리콩 작품. 국립중앙도서관 옆 23.7m 높이 상공을 지나는 육교 '누에다리'는 도로로 갈라진 서리풀공원과 몽마르뜨공원을 비단 실처럼 묶어준다. 육교 중간에 직경 40cm의 커다란 구멍이 두 개 있어 지나는 차량이 아래로 보인다. 이 육교 세 개를 만드는 데 122억원이 들어갔다.

◆한강 조망·생태 육교… 육교의 진화(進化)

이촌, 선유도, 망원, 뚝섬지구 한강공원과 지하철역인 성내역과 당산역에 있는 육교는 일반 육교처럼 인도와 인도를 잇는 게 아니다.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공중으로 가로질러 주택지구와 한강공원을 하나로 합친다.

서부이촌동 대림아파트에서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로 넘어가는 '새남터 보도육교'는 아래로 강변북로, 왼쪽으로 한강철교가 놓여 있다. 차량과 지하철, 여의도 고층 건물까지 한눈에 보인다.

양평동에서 선유도로 들어가는 '선유교'는 넝쿨식물 등을 이용한 식재(植栽)터널 육교다. 걷다 보면 자연 초지, 한강, 월드컵공원 등이 눈앞에 펼쳐져 사진 촬영 명소로도 유명하다.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 지하철 도봉산역 오른쪽 서울창포원에 있는 '전망육교'에는 창포원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승강기를 만들었다. 남부순환도로로 끊긴 관악산과 까치산 사이를 잇는 '관악까치 자연길'은 일종의 '생태 통로'다. 노량진 근린공원 육교 '견우와 직녀'도 녹지공간을 잇기 위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