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광주에 '10개의 아이디어'가 우뚝 솟는다

'예향(藝鄕)' '민주항쟁의 도시' 광주광역시가 국내외 유명 건축가가 짓는 건축 작품들을 통해 '디자인 도시'로 다시 태어난다. 이른바 '어번 폴리(Urban Folly)' 프로젝트이다. 9월 2일 개막하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도미니크 페로, 플로리안 베이겔, 피터 아이젠만, 조성룡 등 국내외 유명 건축가 10명이 광주에서 영감을 얻은 공공 건축물을 만들어 설치하는 프로젝트이다. 전시회 동안 반짝 설치되고 철거되는 임시 가설물이 아니라 전시가 끝난 뒤에도 보존되는 영구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색다른 기획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시도는 한국 도시들 가운데 광주가 처음이다.

◆도시 전체가 건축가의 전시장으로

건축 작품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광주 읍성(邑城)의 궤적을 따라 설치된다. 파주출판도시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 플로리안 베이겔은 읍성의 동문인 서원문 자리의 버스정류장에 작은 탑을 준비했다. 인도가 횡단보도와 만나는 곳에는 작은 문을 별도로 만들어 이곳에 있던 서원문을 기억하게 했다. 읍성의 북문인 공북문 자리에는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을 지은 피터 아이젠만의 작품이 들어선다. 좁은 인도를 따라 문을 연상시키는 투명한 아치를 설치했다. 사람들이 아치를 통과하며 옛 성문을 떠올리게 한다는 설명이다.

공모를 통해 당선된 국내 건축가 정세훈·김세진은 성벽을 상징하는 ㄱ자 모양의 벽을 구상했다. 밑바닥과 꼭대기에만 벽돌을 남기고 가운데는 보행자를 위해 열어 둔 '열린 장벽'이다. 지하를 지상으로 끌어낸 독특한 형태의 이화여대 ECC를 건축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는 옛 시청사거리 교차로 한가운데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정자(亭子) 모양의 폴리를 계획했다.

요시하루 쓰카모토는 잠망경을 닮은 전망대를 통해 지상에 서서 시내를 굽어보는 체험을 선사한다. 근처의 입시학원 건물보다 높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높이가 25m에 달한다. 후안 헤레로스는 사거리 교통섬의 나뭇가지 사이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구조물을 띄웠다.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쾌적하게 쉬도록 냉난방과 음향 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프란시스코 산인은 새로 지어지는 아시아문화의전당을 바라보는 버스 정류장을 구상했다. 정류장은 작은 전시장으로도 활용된다.

◆건축의 사회적인 기능 실험무대

'폴리'는 원래 정원에 장식용으로 세우는 작은 집을 일컫는 용어이다. 지금은 작은 공공건축물 여러 개를 곳곳에 세워 도시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네덜란드 그로닝겐시, 일본 도야마현 등 해외에서 도시 디자인을 강화하기 위해 폴리 작업을 진행한 사례는 있지만, 한국에서 건축가들의 협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폴리를 추진하는 것은 광주가 처음이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은 디자인비엔날레 공동감독을 맡은 건축가 승효상씨였다. 승씨는 "대부분의 디자인 전시가 행사가 끝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 도시에 무언가 남길 수 있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승 감독의 제안에 비엔날레 재단이사장인 강운태 광주시장이 "1년에 10개씩, 10년간 100개의 폴리를 설치해 도시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자"며 적극 호응해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게 됐다. 예산은 폴리 1개에 2억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어번 폴리 프로젝트 담당 큐레이터인 건축가 김영준씨는 "앞으로 폴리 작품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 옛 도심지가 활기를 되찾고 침체된 상권이 회복되는 파급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